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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중국산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박윤슬 기자
입력 2019-02-21 17:32
업데이트 2019-02-2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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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 일상 속 문화 코드가 된 태극기

2002년 월드컵 이후 생활 디자인으로 인기
중국산 휩쓸자 국내 제조업체 5곳도 안돼

극기 부대도 중국산 흔드는 씁쓸한 풍경
규격 안 맞고 깃봉도 없는 짝퉁 저질 제품
광화문 인근에 천막과 함께 설치된 비닐 태극기가 흉하게 훼손된 채로 방치되고 있다.
광화문 인근에 천막과 함께 설치된 비닐 태극기가 흉하게 훼손된 채로 방치되고 있다.
“40개 살 테니까 조금만 깎아줘.”

서울 중구 남대문의 한 문구점 앞에서 태극기 머리띠를 구입하던 한 어르신이 점원에게 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가 고른 물건은 ‘made in china’. 즉 중국산 태극기다. 중국산임을 알고 사지는 않았겠지만 사실 선택권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물건을 사며 제조국까지 유심히 살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관에서 한 어린이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추정되는 데니 태극기를 구경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관에서 한 어린이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추정되는 데니 태극기를 구경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는 박영효가 1882년 고종의 명을 받아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직접 만든 것을 처음으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우리 민족의 얼과 한으로 존재했다.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한 것이 바로 이 태극기다.

이처럼 숭고한 존재였던 태극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우리 일상 속 문화 코드로 변모했고 정부는 관련 훈령도 개정한다. 속옷, 양말 등 일회용 소모품 등과 같이 태극기의 품위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물품에 대해 사용 범위를 제한하던 것을 삭제하고, “국기의 깃 면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해 사용하는 경우나 국민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도록 활용되는 경우”만 그 활용을 제한했다. 전에 없던 태극기 특수였지만 이때 중국산 태극기도 많이 흘러들어왔다.
서울 성동구 동영산업 공장에서 한 직원이 손 태극기에 깃대를 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동영산업 공장에서 한 직원이 손 태극기에 깃대를 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시청 인근 택시 정류장에 훼손된 태극기 스티커가 붙어 있다.
서울 시청 인근 택시 정류장에 훼손된 태극기 스티커가 붙어 있다.
서울 남대문 한 상점에서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가 판매되고 있다.
서울 남대문 한 상점에서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가 판매되고 있다.
중국산 태극기는 순식간에 시장을 잠식해 나가며 태극기 산업을 위협했다. 국민들의 태극기 게양률도 계속 감소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태극기를 직접 제조하는 업체는 5곳이 채 안 된다. 폐수처리가 필요한 염색은 섬유 공단 안에서 해야 하므로 따로 맡기고 염색이 된 원단을 받아 공장에서 재가공한다. 재단, 재봉 등 대부분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서울 성동구 주택가에 태극기가 게양돼 있다. 현 국기법에 따라 심한 눈, 비바람 등 악천후로 인해 국기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24시간 게양 가능하다.
서울 성동구 주택가에 태극기가 게양돼 있다. 현 국기법에 따라 심한 눈, 비바람 등 악천후로 인해 국기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24시간 게양 가능하다.
서울 성동구 동영산업 공장에서 직원이 공항에 납품할 대형 태극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가로길이 6m 50에 이르는 이 특수 주문 태극기는 공장에 설치된 프린팅 기계를 이용, 천을 이어 만들었다.
서울 성동구 동영산업 공장에서 직원이 공항에 납품할 대형 태극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가로길이 6m 50에 이르는 이 특수 주문 태극기는 공장에 설치된 프린팅 기계를 이용, 천을 이어 만들었다.
서울 성동구 동영산업 공장에서 직원이 태극기 재단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3·1절 행사에 사용될 이 태극기는 2009년 북한산에 위치한 진관사 보수공사 중 발견된 것으로 일장기 위에 태극기가 덧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성동구 동영산업 공장에서 직원이 태극기 재단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3·1절 행사에 사용될 이 태극기는 2009년 북한산에 위치한 진관사 보수공사 중 발견된 것으로 일장기 위에 태극기가 덧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남대문 한 문구점에서 어르신이 중국산 태극기를 구매하고 있다.
서울 남대문 한 문구점에서 어르신이 중국산 태극기를 구매하고 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며 등장한 태극기 부대는 국내업체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대규모 행사에 쓰이는 태극기는 중국산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국산은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만큼 질적인 차이도 크다. 태극기는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라 제작돼야 한다. 중국산이 이러한 규정을 지킬 리 없다. 규격에 맞지 않는 모양은 물론이거니와 깃봉도 없는 저질이 난무한다. 그야말로 짝퉁이다. 애국을 말하면서 짝퉁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은 못내 씁쓸하다.

올해는 3ㆍ1 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진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3ㆍ1절을 앞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존중받고 널리 휘날려야 할 태극기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태극기 부대의 부정적 이미지 확산이 시민의 태극기 구매 욕구를 떨어뜨렸고 지자체 또한 태극기 사용에 있어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성수동에서 태극기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정구택(69) 동영산업 대표는 ‘태극기에 정치적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걱정된다’며 ‘하루 빨리 태극기가 다시 사랑받길 바란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글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19-02-2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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