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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안내원도 외국과 사업에 적극 관심…“전형적인 돈주 가족”

북한안내원도 외국과 사업에 적극 관심…“전형적인 돈주 가족”

강경민 기자
입력 2019-02-18 17:10
업데이트 2019-02-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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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여행금지 직전 미국 작가의 북한 여행기가 그린 돈주의 생활“돈주는 반체제 아니야…김정은 체제와 공생관계”

트래비스 제피슨이 쓴 북한 여행기 책 표지
트래비스 제피슨이 쓴 북한 여행기 책 표지
“(북한) 안내원 S는 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독일에 (대북) 제재는 신경 쓰지 않을 강심장 사업가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무슨 사업을 할 생각이냐고 물으니, S는 곧바로 프랑스 화장품, 정보기술 서비스, 가발용 인모 등 ‘어떤 것이든’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남자 형제가 천재적인 프로그래머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의 작가 겸 예술 비평가 트래비스 제피슨(40)이 최근 뉴욕타임스의 일요판 잡지 뉴욕타임스매거진에 쓴 북한 여행기에 소개된 제피슨과 북한 안내원 S(여)간 대화의 한 토막이다.

제피슨은 2012년부터 일반적인 관광객으로 3번 방북, 2016년 여름 김형직사범대의 1개월짜리 어학 연수프로그램 방북, 2017년 봄 2주짜리 추가 연수 프로그램 방북 경험을 토대로 지난해 ‘평양에서 또 만나요(See You Again in Pyongyang)’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다.

마지막 방북 때인 2017년 봄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억류 사건 등으로 서방의 대북 관광객 수가 곤두박질쳐 운전기사를 포함해 안내원 3명이 맡은 관광객은 제피슨 혼자였다.

안내 일이 없을 때 뭐 하느냐는 질문에 끊임없이 휴대전화가 울려대는 S(당시 26세)는 “뭐, 그냥 빈둥빈둥, 시간 보내는 방법 없나 찾는 거죠. 우리 사무실 동료 몇몇은 컴퓨터 게임 월드 오브 크래프트 고수가 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S는 1년도 채 안돼 다시 만나 친구 같은 사이가 됐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 잘 입을 열지 않았다. S가 말한 조각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사업가”라고 소개한 아버지는 북한의 한 해외공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아버지 어머니 모두 중국, 아프리카, 남미도 종종 다녀온다. 어머니는 유럽과 미국 요리 전문점을 직접 운영하는 요리사로 연회 요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S의 가족은 북한의 “돈주”의 전형이다. 돈주는 북한 경제의 변화를 주도하는 신흥부자 계층을 일컫는다.

류경종합체육관 길 건너편에 있는 신축 체육관은 맞춤 양복, 고급 넥타이와 가죽 지갑, 롤렉스 시계 등을 파는 상점과 베트남 포장 코카콜라 등의 수입 음료 자동판매기가 놓인 간이 식당, “내가 서울에서 가본 어떤 찜질방보다 호화로운 찜질방”, 인공폭포를 갖춘 실내 수영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런 곳은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세워진 무대 장치일 뿐이라는 말들과 달리, 내가 이 곳을 찾았을 때는 남자 탈의실에 있던 20여명의 고객들이 우리 일행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정말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고 제피슨은 말했다.

제피슨이 안내원 S 등과 함께 간 대동강맥주집에도 “넥타이와 마오 복장의 목깃을 풀어헤친 북한판 여피족” 즉 돈주들로 붐볐다.

이 곳으로 안내한 “K 동무”는 당시 37세의 북한 국영 여행사의 국장. 돌체앤가바나 면셔츠와 네온 나이키 신발 차림이어서, 가슴에 단 붉은 핵 김일성·김정일 배지만 아니었으면 남한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K도 S의 부모처럼 종종 해외여행을 한다.

모임이 파할 때 제피슨이 돈을 내려 했으나 “K 동무는 손을 내젓더니 셔츠 가슴 주머니에서 50달러 짜리 지폐 다발을 꺼내 그중 한 장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점원이 달러와 북한 지폐 수천원을 거스름돈으로 주자 K는 달러는 챙기고 북한 돈은 점원에게 (팁으로) 되돌려 준 뒤 운전기사가 대기 중인 주차장으로 어슬렁거리며 나갔다.”

제피슨은 “북한의 정치체제가 시장경제의 파괴적 힘을 견뎌낼 수 있을까” 자문하고 북한 돈주의 성격에서 그 답을 찾았다.

돈주 계층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정은이 (북한의 경제발전을) 돈주에 의지하게 된 것처럼, 돈주도 김정은 체제의 생존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출신의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설명을 인용해 옛 소련 체제의 몰락에 중상층의 불만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과 달리, 북한의 중상층인 돈주는 북한 체제가 붕괴하고 그 결과 남북한이 통일되면 “자신들은 2류 이하 계층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현 체제 유지가 돈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만큼, 돈주들은 반체제 계급이라기보다는 “그저 (북한) 국가가 자신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바란다”고 제피슨은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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