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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독한 기자’의 대통령 기자회견 관전기/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열린세상] ‘독한 기자’의 대통령 기자회견 관전기/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입력 2019-01-24 17:24
업데이트 2019-01-25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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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때 한 여기자의 질문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은 30년 전 기자 시절 김종필 총재와의 오래된 추억을 나의 뇌리에서 끄집어냈다. 1989년 말 정치부 초년 기자로 신민주공화당을 출입하던 어느 날 김 총재가 예정에 없던 기자 간담회를 하겠다고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총재실 소파에 김 총재가 앉고 당 간부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모습이 위엄 있게 보였다.

김 총재가 특유의 저음으로 말을 시작했다. “지난 1980년에 전두환 등 신군부에게 철저히 유린당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용서했으며 아무런 원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볼 때 지난날을 매듭짓자면 전씨가 아무런 조건 없이 증언에 나서야 합니다.” 당시 5공 청산 마무리 수순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 증언을 언급한 것으로, 이는 곧바로 여야 4당의 합의로 실행에 옮겨졌다.

문제는 김 총재의 다음 발언이 나온 이후에 발생했다. “전두환이 빼앗아 간 나의 운정장학재단도 결국은 우리나라 안에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소송을 걸어 되돌려 받으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수많은 기자 틈에 있던 내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1980년 부정축재 환수 조처에 의해 국고로 귀속됐는데, 사업을 하신 적도 없는 분이 무슨 돈으로 재단을 만들었습니까?” 당돌한 질문에 순간 장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 총재가 억양을 높여 대답했다. “협력해 준 사람이 많았어요.” 나도 지지 않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전두환의 일해재단이나 이순자의 새세대심장재단과 뭐가 다릅니까?” 그 순간 김 총재는 “에이, 그만둡시다”라며 일어서버렸다. 모처럼의 기자 간담회가 나로 인해 난장판이 돼 속된 말로 파투 난 것이다. 이 상황을 그대로 신문에 기사로 썼고, 동료들로부터 ‘독한 기자’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김 총재의 화난 표정과 당 간부들, 특히 대변인의 당황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내가 JP 진영(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뒤 민자당 공화계)에서 ‘블랙리스트 1호’가 됐음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며칠 뒤 김 총재가 출입 기자들을 부부 동반으로 송년 만찬에 초청했는데, 부인인 박영옥 여사가 “우리 집 양반과 이름도 같은데, 잘 좀 써줘요”라고 했다. “예, 예”라며 건성건성 대답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몇 달쯤 지났을까. 측근 의원이 나에게 “총재님께서 유 기자 참 강직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또 미안한 마음과 함께 ‘JP라는 분이 참으로 대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여러 차례 미안한 마음이 들었음에도 당시 기자로서 응당 해야 할 질문을 했다는 생각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기자의 질문이 이번처럼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은 없었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다각도로 제시됐으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극과 극의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정치적 차원과 별개로 언론계와 언론학계에서 심도 있는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는 공적인 분야에서 사실에 근거해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다. 질문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이번에 논란이 된 질문은 내용 면에서 좋은 질문은 아니라고 본다. 먼저 질문 내용을 보자 “…현실 경제가 매우 얼어붙어 있습니다.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 대통령께서 이와 관련해서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를 하시고 계셨는데요. 그럼에도 현 정책에 대해서 기조를 안 바꾸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나도 정당 대변인으로, 기관장으로 기자 간담회 또는 강연에서 질문을 많이 받아 보았다. 가장 좋지 않은 질문은 정견 발표형 질문이다. 자신의 의견을 길게 말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는 식이다. 또 좋지 않은 질문은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듯한 강요형 질문이다. 그다음으로 구체성이 결여된 포괄형 질문이다. 논란이 된 질문에는 정견 발표형과 강요형, 포괄형 질문이 혼재돼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기자의 용기는 평가할 만하다.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은 삼갈 일이다.
2019-01-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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