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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생일 아키히토 일왕 “역사, 후세에 정확히 가르쳐야”

85세 생일 아키히토 일왕 “역사, 후세에 정확히 가르쳐야”

이기철 기자
이기철 기자
입력 2018-12-24 00:29
업데이트 2018-12-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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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마지막 생일 연설…새해 4월 말 ‘생전’ 퇴위

“재임기간 전쟁 없어 안도”…야스쿠니 신사 찾지 않아
‘극우 행보’ 아베 총리와 과거사·야스쿠니 행보 대비
“2차대전서 많은 목숨 사라져”…이 대목서 음성 떨려
12살 때 일본 패전 지켜봐…평민 여성과 결혼도 화제
“개인적으로 한국과 연을 느껴”…‘한국인 피’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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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퇴위 아키히토 일왕 “재임기간 전쟁 없어서 안도”
내년 퇴위 아키히토 일왕 “재임기간 전쟁 없어서 안도” 아키히토(明仁?가운데) 일왕이 자신의 85세 생일인 23일 도쿄 왕궁에서 일반에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은 나루히토(德仁) 왕세자, 오른쪽은 미치코 왕비. 내년 4월 말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헤이세이(平成?아키히토 일왕 취임 해부터 시작된 연호로 올해가 30년)가 전쟁이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된 것에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bulls@yna.co.kr/2018-12-23 16:19:11/ <연합뉴스
내년 4월 말 ‘생전’ 퇴위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자신의 재임 기간 “전쟁이 없어서 안도한다”고 말했다고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이 23일 밝혔다.

이날 85세 생일을 맞은 그는 지난 20일 도쿄 왕궁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헤이세이(平成·아키히토 일왕 취임 해부터 시작된 연호로 올해가 30년)가 전쟁이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된 것에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 연설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궁내청은 밝혔다. 그는 일본 우익들의 압력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찾지 않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과거사 및 공식 행보에 차이를 보였다.

아키히토 일왕은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목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라졌다는 것, 일본이 전후에 건설한 평화와 번영이 이 수많은 희생과 일본 국민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위에 건설된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라고 말했다. 사전에 녹음된 연설에서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다는 부분에선 그의 음성이 떨렸다고 AFP가 전했다. 또 “이 역사를 정확히 전후에 태어난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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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국빈 방문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7일 아키히토 일왕 초청만찬에서 일왕과 건배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일본을 국빈 방문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7일 아키히토 일왕 초청만찬에서 일왕과 건배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아키히토 일왕은 취임 이후 자신이 헌법에 따라 정치적 권한이 없는 ‘상징 천황(天皇)’의 바람직한 자세를 추구해 왔다며 “양위의 날을 맞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런) 자세를 추구하면서 일상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에 이어 현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내년 5월 1일 새 일왕으로 즉위한다.

아키히토 일왕은 오키나와(沖繩)나 사할린, 팔라우, 필리핀 등을 방문해 전쟁 희생자들을 추도한 것을 “잊을 수 없다”며 “일왕으로서의 여정을 끝내려는 지금, ‘상징 천황’으로서 나를 지지해 준 많은 국민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아키히토 일왕은 2차대전 당시 일왕으로 전쟁 가해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 원수’ 히로히토(裕仁·1901~1989)의 아들이다. 그가 11세 때 일본의 패전을 지켜봤다. 선대 왕들과 달리 평민인 쇼다 미치코와 결혼한 그는 히로히토가 사망한 1989년 1월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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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때의 아키히토…23일, 85세 생일 맞아
11세 때의 아키히토…23일, 85세 생일 맞아 아키히토(明仁) 현 일왕이 11세의 왕세자 당시인 지난 1945년 12월 도쿄에서 등굣길에 나서는 모습.
아버지 히로히토(裕仁?1901~1989)가 작고한 1989년 1월 일왕에 즉위한 아키히토는 내년 4월 말 퇴위하는데, 23일 재임기간 마지막으로 85세 생일을 맞았다.
bulls@yna.co.kr/2018-12-23 16:21:26/ <연합뉴스
아키히토 일왕은 ‘전쟁 책임’이라는 부친의 굴레를 의식한 듯 취임 이후 일본 국민과 고락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했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상징으로의 역할을 국민에게 다가서는 것으로 해법을 찾은 것이다.

그는 재임 중 국내외 전쟁 희생자 위령이나 재해 지역 방문 등의 일정에 신경을 쏟았다. 아키히토 일왕은 재임 중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이나 한신(阪神)대지진 등의 막대한 인명 피해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낀다”면서 자원봉사 등을 통해 서로 돕는 모습에 “항상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집권 자민당과 아베 총리가 극우 일변도의 행보를 보이며 침략전쟁이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는 것과 달리 그는 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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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 퇴위 열도 충격
아키히토 일왕 퇴위 열도 충격
일본의 패전일인 지난 8월 15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쟁 희생자 추도식에서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이후 4년 연속 반성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의 몸에 한국의 피가 흐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생일 기자회견에서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해 한국인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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