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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110년 전 문갑·영친왕 사진 엽서… 베델 사랑과 정신, 한국 품으로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110년 전 문갑·영친왕 사진 엽서… 베델 사랑과 정신, 한국 품으로

이주원 기자
입력 2018-12-23 23:18
업데이트 2018-12-2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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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베델 후손, 유품 30여종 기증

한국인 일상 담긴 엽서로 지인과 안부
생전 수집 사진 뒷면엔 날짜·상황 기록
대한제국 흔적 고스란히 3대 걸쳐 간직

‘독립운동 지원’ 고종 황실, 영국에 엽서
베델 사후에도 부인에게 고마움 전해

“유품 통해 조부 독립 정신 기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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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 부부가 주고받았던 우편엽서. 엽서 뒷면에는 당시 조선의 인물과 풍경 등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사진들이 인쇄돼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베델 부부가 주고받았던 우편엽서. 엽서 뒷면에는 당시 조선의 인물과 풍경 등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사진들이 인쇄돼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한국 사람들이 제 할아버지가 한국 역사에 남기신 업적과 희생정신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기억하려는 진심을 늘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들 유품이 우리 가족에게도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에 계속 지니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지만 한국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유품이 있어야 할 곳은 제 집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항일독립운동의 ‘촉진제’ 역할을 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22일(현지시간) 영국 스폴딩 자택에서 열린 베델의 유품 기증 협의식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수전은 “이 유품을 통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한 할아버지 베델의 희생과 정신에 대해 계속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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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손녀인 수전 제인 블랙이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160㎞ 떨어진 스폴딩의 자택에서 국가보훈처에 건넨 수납용 가구인 문갑. 베델이 조선에 머물던 1900년대 초 사용했던 것으로 베델 부부는 이곳에 서류 등을 보관했다. 국가보훈처 제공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손녀인 수전 제인 블랙이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160㎞ 떨어진 스폴딩의 자택에서 국가보훈처에 건넨 수납용 가구인 문갑. 베델이 조선에 머물던 1900년대 초 사용했던 것으로 베델 부부는 이곳에 서류 등을 보관했다.
국가보훈처 제공
베델 후손의 기증으로 베델이 쓰던 수납용 가구인 문갑(文匣)과 사진, 우편엽서 등 1900년대 초반 대한제국 시절 쓰였던 유물이 대거 한국으로 돌아온다.

베델이 1909년 한국에서 사망한 뒤 부인인 메리 모드 게일이 영국으로 돌아가며 가져갔던 유품에는 당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유품을 기증받게 될 보훈처는 이날 우선 육안으로 보관 상태를 점검하고 100년이 지났지만 양호하다고 판단했다. 고이 보관한 듯 사진들은 구겨짐이나 바랜 흔적이 거의 없이 원본 그대로였고 엽서도 100여년 전의 우표가 그대로 부착돼 있었다. 내용도 확연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기증된 유물 중 수납용 가구인 문갑은 역사적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갑은 당시 안방 침실이나 창 밑에 두고 문서나 편지 등 개인적인 물건이나 일상용 물품을 보관하던 가구다. 수전이 기증한 문갑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61.5㎝였다. 베델이 한국에 머물 때 부인과 사용했던 것으로 내년이면 110년이 되지만 녹이 슬거나 훼손된 흔적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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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이 한국에서 대한매일신보 활동을 할 당시 찍은 사진. 사진 뒷면에는 베델의 당시 나이(35)가 기록돼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베델이 한국에서 대한매일신보 활동을 할 당시 찍은 사진. 사진 뒷면에는 베델의 당시 나이(35)가 기록돼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1909년 베델이 한국에서 사망하자 부인인 게일이 이 문갑에 베델의 유품을 넣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왔다는 게 수전이 전해 들은 얘기다. 이후 문갑은 베델의 며느리에게 전수됐고 2002년 사망하자 수전에게 전달됐다. 베델가(家)가 3대에 걸쳐 보관해 온 것이다. 수전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문갑 청소를 시키고 용돈을 주곤 했었다”며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좀더 잘 관리할 걸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엽서 수십장은 대부분 베델 내외가 지인과 주고받은 연하장이었다. 연하장은 대부분 당시 한국에서 발행된 것이었다. 엽서 뒷면에는 고종 황제와 영친왕의 사진,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 등이 인쇄돼 있어 시대상을 반영했다. 찍힌 날짜 도장과 우표도 훼손되지 않았다. 베델 가족은 이 엽서를 통해 지인과 수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고종의 비서승으로 베델이 대한매일신보를 제작하는데 많은 지원을 했던 박용규가 게일에게 보낸 엽서는 베델의 사망과 게일의 귀국 후에도 계속됐다. 고종 황실이 독립운동을 펼친 베델을 지원했고 사망 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마움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베델이 생전에 수집했던 사진 뒷면에는 자신의 서명과 함께 사진을 촬영한 날짜, 촬영 당시 상황 등을 기록해 놓았다. 대한매일신보에서 함께 일했던 양기탁 선생 등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보훈처는 이날 이들 유품을 영구 임대 방식으로 기증받기로 했다. 기증 유품은 문갑, 베델의 사진이 담긴 앨범 3개, 원본 형태의 사진 10장, 우편엽서 20장 등이다.

수전은 “어머니는 항상 자신이 시아버지(베델)에게 한국 독립운동에 대해 말하면 ‘별일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란 답을 들었다고 자주 얘기했다”며 “자신의 유품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 하늘에서 보시더라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수전은 “할머니(게일)는 조선을 사랑하고 일제의 만행을 잊지 못해 유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유품을 보는 한국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독립)정신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으면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스폴딩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독립운동가의 명패
독립운동가의 명패
2018-12-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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