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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의좋은 남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의좋은 남매

입력 2018-12-04 17:28
업데이트 2018-12-0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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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겨울, 대전
2012년 겨울, 대전
20세기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1910~1998) 감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4남4녀의 막내로 태어난 구로사와는 누나들에 대해 각별한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네 살 위의 형(초등 2학년)이 학교에서 운동하다가 추락해 피투성이로 집에 온 모습을 기억한다.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였는데, 그걸 보고 넷째 누나 모모요가 갑자기 “안 돼! 내가 대신 죽을래”라며 울음을 터뜨린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구로사와는 넷째 누나를 회고하며 “우리 집안에는 감정 과다에 이성 결핍이라고 할까. 사람만 좋으며 감상적인, 좀 엉뚱한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지만, 어린 소녀가 남동생을 위해 대신 죽겠다고 울며 외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구로사와는 넷째 누나가 누나들 중 가장 예쁘고 다정했다고 회상한다. 유리같이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작은누나는 그 후 16살 어린 나이에 요절한다. 구로사와는 넷째 누나를 생각할 때면 눈물이 난다. 그는 “넷째 누나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몇 번이나 코를 풀고 있다”고 고백한다. 남동생을 위해 대신 죽겠다고 외치는 소녀의 영혼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속(代贖) 사상이라도 깃들어 있었던 것일까? 물론 구로사와 집안은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구로사와는 셋째 누나 다네요에 대해서도 애틋한 추억이 있다. 1945년 일본이 패전을 향해 치닫던 비상시국이었다. 구로사와는 영화제작 중 간신히 틈을 내서 미군 공습을 피해 아키타에 피난 중이던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부모님이 계신 집에 도착한 건 한밤중이었다. 쾅쾅 대문을 두드렸다.

부모님을 돌보려고 가 있던 셋째 누나가 대문 틈새로 내다보고는 “아키라다!” 하고 외치더니, 문밖에 있는 구로사와를 그대로 둔 채 부엌으로 뛰어가서 서둘러 쌀을 씻기 시작했다. 구로사와는 어이가 없었다. 동생이 왔는데 대문도 열어 주지 않다니. 제대로 쌀 구경도 못 했을 동생에게 빨리 쌀밥을 먹이고 싶었던 누나의 눈물겨운 마음씨였다.

유치원 봉고차에서 내린 여동생을 오빠가 집으로 데려오고 있다. 손을 꼭 잡은 오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초겨울 추위를 녹여 준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2018-12-05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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