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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잘살자는 포용국가…복지·혁신 통해 빈부격차 줄여야”

“함께 잘살자는 포용국가…복지·혁신 통해 빈부격차 줄여야”

박기석 기자
박기석 기자
입력 2018-11-28 21:10
업데이트 2018-11-2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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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말하는 포용국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2019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적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고, 더 공정하고 통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며 집권 중·후반기 국가 패러다임으로서 ‘포용국가’를 제시했다. 포용국가론이 경제 위기를 해소하고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서울신문은 28일 김재훈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장준호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상연 정치부장의 사회로 대담을 열어 포용국가론의 의미와 과제, 전망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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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용국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의 전문가 대담에서 최배근(오른쪽부터)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장준호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김재훈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포용국가론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용국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의 전문가 대담에서 최배근(오른쪽부터)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장준호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김재훈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포용국가론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포용 국가

→포용국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확 와닿지 않는데, 좀 쉽게 설명해달라. 한마디로 분배를 강화하자는 얘긴가.

-김 교수 포용국가의 배경이 되는 ‘포용적 성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온 용어다.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 기존 성장 담론의 대안으로 제시됐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포용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경제·사회 시스템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포용국가론을 내놓은 것이다.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말했듯이 ‘함께 성장하자. 함께 잘살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장 교수 미국 MIT대 경제학과의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역사적 사례를 검토하면서 한 국가의 성패는 포용성을 얼마나 제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결론 내린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확보해 모든 시민이 공공성의 공간에서 삶을 질적으로 향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포용국가의 기본 명제다. 모두가 함께 성장을 누리고, 자유·평등·정의를 실감하며 경제·사회적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국가가 포용국가다.

-최 교수 서구에서 포용적 성장이란 개념은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는 흐름 속에서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공정, 반칙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부의 축적 과정이 비교적 정당하다고 여기고 재벌과 부자에 대한 국민 정서가 부정적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수십년간 유력 재벌들이 정경유착 등으로 처벌받는 것이 반복되면서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 불공정과 반칙이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현재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가 경제에 국한된 게 아니며 사회적 공정성을 확보해야 해결된다는 인식에서 포용적 성장이 포용국가라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빈부 격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빈부 격차가 11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는 통계가 나왔는데.

-김 교수 올해 가계동향조사 표본의 모집단은 2015년 인구 총조사 결과인 반면 지난해 가계동향조사는 2010년 인구 총조사 결과라 올해와 지난해의 통계를 연속적으로 분석 가능한지 논란이 있다. 구체적으로 올해 모집단에는 지난해에 비해 소득이 낮은 노인·여성 가구가 대거 포함돼 소득 불평등이 더 심화된 거처럼 보일 수 있다. 이를 감안해서 통계를 봐야 한다.

-장 교수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가 굉장히 심해지는 추세다. 자본이 집중되고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노동을 통해 얻은 임금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중산층이 하위층으로 떨어지거나 소수는 전문 지식을 가지고 상위층으로 올라간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으로 대부분의 부가가치가 창출되기에 빈부 격차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빈부 격차를 줄이려면 복지로 보완하거나 전국가적으로 혁신을 이뤄내 혁신의 부가가치가 중산층으로 흘러갈 수 있는 제도를 완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둘 다 안 돼 있다. 기초과학과 기술의 혁신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산학을 연결해 대학의 연구가 즉각 기업에 전달되도록 하는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 복지 지출만 늘려서는 국가 재정 부담이 어느 시점에 굉장히 커지기 때문에 정부가 한편으로는 사회 전반의 혁신을 신경 써야 한다. 이것이 포용국가의 또 다른 축이다.

-최 교수 가계동향조사가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올해 1, 2분기에 하위 50% 가계의 명목소득이 감소한 데 주목해야 한다. 저소득층이 빈민화되고, 중산층이 저소득층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고용지표 악화와 연결시켜 파악할 수 있다. 일자리가 줄어든 분야는 제조업과 자영업,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이다. 예를 들어 한국GM이 군산에서 철수하면서 정규직 일자리가 줄고, 협력업체의 일자리도 준다. 일자리 감소로 지역 소비도 감소하니 지역 자영업이 폐업하고, 상가를 관리하거나 임대하는 업종도 타격을 받으면서 지방발 부동산 경기 냉각이 시작된다. 결국 우리나라 경제 구조가 제조업에 과잉 의존해 제조업이 충격을 받으면 전체 경제가 흔들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제조업 위기가 시작됐고 제조업 일자리가 급감했다. 제조업으로 수십년 먹고살았는데, 앞으로 수십년 먹고살 수 있을 새로운 산업을 만들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제조업이 붕괴되는 상황이라 성과가 안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가 재정 투입을 해서 경쟁력 없는 산업이나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긴급 대책을 펴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특히 자영업 중 가장 영세한 분야가 음식, 숙박, 도소매업이다. 이 분야의 1인당 소득은 제조업 종사 임금근로자의 27~28%다. 한계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소득이 열악해진 건 우선 과다 경쟁 때문이기에, 가계 소득을 지원하고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정책 기조는 맞다고 본다. 그러나 조기 퇴직하거나 구조조정으로 퇴사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영업으로 밀려 들어오는 게 문제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자영업의 악순환 고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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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책임

→기업들은 왜 스스로 위기에 대비해 혁신하지 못했을까.

-최 교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기업들이 과거의 사업 운영 방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구글과 애플은 플랫폼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진화했다. 플랫폼 기업은 협력과 공유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가치를 창출한다. 기업 밖의 아이디어로 돈을 버는 것이다. 가치창출방식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은 자기가 가진 기술과 역량으로 스스로 수익을 만들고 혼자 향유하는 방식이다. 카카오가 카풀 사업을 시작했는데, 세계적 차량공유업체 우버는 카풀 사업보다는 차량공유를 통해 얻어지는 엄청난 데이터로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 시장 투자자들도 우버의 데이터를 보고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카카오는 카풀 사업으로 돈을 벌겠다고 하니 택시업체와 충돌하고 갈등을 빚는 것이다. 플랫폼을 더 키워 협력과 공유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여전히 제조업 마인드를 못 벗어나고 있다.

-김 교수 기업이 장기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신수종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단기적 이윤을 낼 수 있으면 기존 시장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5대 재벌이 경제에서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차를 생산하는 기업이 차를 수송하는 물류회사를 갖고 있고, 이 물류회사의 이윤이 전체 물류산업의 이윤보다 더 크다. 일부 재벌이 모든 분야의 기업을 갖고 있다 보니까 10대 재벌 외의 다른 기업들은 경영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소득 불평등 문제의 근본적 문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심화와 불공정성이다. 재벌과 대기업들이 현재 지위와 이윤에 안주했다. 중국 등 후발 개발도상국들이 추격하니 신기술, 신제품, 신산업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없어 혁신에 취약한 것이다. 정부가 기업들로 하여금 경쟁력이 약화되는 주력 산업을 포기하고 신산업으로 옮겨가게 했어야 했는데, 주력 산업에 링거 꽂아서 억지로 살린 것이다.

-장 교수 기업들도 사실 시대적 변화를 느끼고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력에 한계를 보이는 것은 기업의 탓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차원의 협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학과 연구소는 기초과학 연구를 국가와 기업의 지원을 받으며 철저히 장기적으로 해야 하고, 연구 결과가 기업의 필요와 연결돼 비즈니스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소통이 중요한데 지금까지 소통의 망을 촘촘히 짜오지 못해 대학과 기업, 정부 간 코디네이션이 안 된 것이다. 혁신성장을 제대로 하려면 산학 협력의 소통 구조를 촘촘히 이어주는 역할을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중앙에 자본과 노동력, 기술이 집중돼 있기에 포용적 성장을 공간적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을 통해 한 지역에서 산업과 일자리가 재생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 정책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구조적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사회 전반을 통합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권력의 책임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포용국가론이 성과를 내기 위해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시행해야 할까.

-최 교수 조세체계를 전면 개편해 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증세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 조세체계는 소득에 기반한 세제로 구성됐는데 현재의 저성장 기조에서는 증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조세체계를 자산 기반 세제로 개편해야 한다. 자산은 주로 근로소득이 없는 50대 이상이 보유하고 있는데, 소득 기반 세제 체제에서는 경제활동을 왕성히 하는 20~30대가 50대 이상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고 50대 이상 세대들을 뒷받침하게 된다. 세금으로 인한 세대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부동산 등 자산 기반 세제를 통해 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가도록 조세체계를 개편하면 국민들도 동의할 것이다.

-장 교수 포용국가 되기 위해선 첫째, 사회적 대화가 모든 분야에서 진행돼야 한다. 둘째 고용, 복지, 교육, 기술 등 핵심적 공공재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혁신하고 책임져야 하며, 특히 지금의 교육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셋째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시장경제가 필요하다. 넷째 정치의 혁신과 협치가 필수다. 정치권이 합의를 통해 한 가지 방향으로 장기적으로 나갈 수 있는 세련된 모습을 보여야 포용성과 혁신성을 지향하는 포용국가를 만들 수 있다. 호주는 2002년 사회적 포용법을 입법하고 사회적 대화 기구를 만들어 다양한 문제를 포용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포용적 성장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선 정치적 협치가 중요하다.

-김 교수 행정 혁신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2, 3, 4차 산업혁명을 이뤄야 하는 압축성장을 해왔기에 정부부처 등 공공기관들이 1960~7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자기 역할을 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시장에 어떻게, 어디까지 안착시킬지 공공기관이 꼼꼼히 지켜보고 따져봐야 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2018-11-2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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