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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경의 문화읽기] 썸타는 사회의 인구학적 진실

[홍석경의 문화읽기] 썸타는 사회의 인구학적 진실

입력 2018-11-21 22:26
업데이트 2018-11-2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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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결혼식 소식을 들으면 전보다 더 크게 축하하게 된다. 저 젊은이들은 어떻게 난관을 뚫고 결혼까지 도달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동시에 불경하게도 미래의 한국 국민을 생산할 가정이 하나 늘었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청춘남녀 천지인 캠퍼스에 연애 소식이 줄었고, 학내 커플, 과 커플도 드물다. 그럼 요즘 젊은이들은 서로 사귀지 않고 뭘 할까? 애인이 감옥에 가거나 몇 개월씩 노동 현장으로 사라지던 시절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도 연애를 했고, 전쟁 중에도 아이를 낳았었는데. 온라인에서는 한편에 ‘진짜’ 페미니스트, ‘책 한 권 읽은’ 페미니스트와 ‘한남’, ‘여혐’ 집단이 있고, 다른 편에서 페미니스트, ‘메갈’, ‘김치녀’, ‘남혐’ 집단이 댓글로 전쟁을 한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는 연애 없는 썸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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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오랜 외국 생활 끝에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 일 가운데 하나가 이 썸이다. 한국의 연애와 썸의 가장 큰 차이는 서로에게 사귀자고 했는지의 여부와 그 사실을 주변에 알렸는지의 여부다. 즉 나와 너, 그리고 주위 친구들에게 공식화된 커플 관계인지의 여부일 뿐 그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스킨십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 동안 만났는지와는 상관이 없다. 이처럼 썸은 공개되지 않은 두 사람 사이의 친밀성의 문제로 제한되기 때문에 개인은 동시에 여러 썸을 탈 수 있다. 일종의 감정의 분산 투자인 셈이다.

가부장적 규범이 공고한 한국에서 연애란 행복한 결말이 단 하나, 즉 결혼이고 대부분이 불행한 결말을 맺게 되는 불행한 장르이다. 할 때는 행복하지만 오직 하나의 만남만 계속 행복할 뿐 나머지는 불행이 예고된 이야기인 연애, 그러므로 여기에 감정자본을 집중 투자하는 것은 회복도 재투자도 힘든 위험이 큰 사업이다. 그 결과 현명한 요즘 청년들은 분산 투자를 한다. 어느 자본이 잘 자라는지, 상대방의 집중 투자 정도도 감안하면서 나의 감정을 투자하는 썸을 동시에 여러 사람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노동시장은 갈수록 유동적이고 집값은 오른다. 미세먼지와 기온 상승은 자신의 DNA를 퍼뜨릴 지구마저 불안한 장소로 만든다. 남녀가 함께 살며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하부구조와 상부구조가 이처럼 불안한데,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대학의 조기 졸업, 또는 전 국민이 누리는 어린이집 등을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종양 위에 반창고 붙이는 격이다.

국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지속되는데, 대한민국 국민이란 어떤 얼굴을 지녀야 하나? 국민을 확보하는 지속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연애의 행복한 결말이 결혼이라는 유일의 해결책이 아니고 길고 짧은, 또는 평생간의 동거 등 다양할 수 있고, 이 모든 관계에서 낳은 아이들이 국민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를 정비한다면? 이민의 증가와 국제결혼의 증가는? 이미 14커플 중 한 커플이 외국인과의 결혼이라는데, 지금과 같이 한국의 청년들이 여혐과 남혐의 감정 속에 있다면 이 경향은 갈수록 강화될 것이다. 한국을 떠나자는 담론과 한류의 매력에 끌려서 온 외국인의 국내 거주 증가는 다문화 가족을 증가시킬 것이다.

질문 형식으로 이 두 가지 해결책을 제안했지만, 올해의 출산율이 1.0 밑으로 떨어질 것이 예상되는 현재 현실은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성장한 자녀의 동거인을 무시할 수 있으며, 결혼을 하겠다는데 시시비비를 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이제 늦된 이데올로기의 온실인 텔레비전의 아침과 주말 드라마 속에나 있는 재현일 뿐이다.

백퍼센트 외국인 아동의 시골 초등학교, 절반 이상이 외국 국적인 도시 학교도 생기고 있다. 한국 청년들과 내적인 젠더 긴장 및 경쟁을 겪지 않는 다문화 커플들의 출산율이 더 높을 가능성이 크고, 이것은 다문화적 사회변화를 먼저 겪은 선진국의 사례가 말해 준다.

한국이 가부장적 결혼제도의 후퇴와 다문화의 문화적 쇼크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가 향후 매우 커다란 사회·정치·문화적인 화두가 될 것이다. 우리의 머리가 뒤처졌을 뿐 우리의 발은 이미 이 미래 속에 서 있다.
2018-11-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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