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B-Side] 응원법·떼창 없던 블랙핑크 콘서트… 체조경기장 입성 의미와 한계

입력 : ㅣ 수정 : 2018-11-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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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엔터테인먼트 제공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문화부 방송·가요 담당을 맡게된 지 5개월 반이 지났다. ‘덕업일치’의 삶을 실현할 기회를 얻은 뒤 많은 콘서트를 다니고 있다. 근무일이 아닐 때도 최대한 시간을 내 여러 공연을 찾아다니는데 많은 공연을 집중적으로 보다 보니 비교하는 눈도 조금씩 생긴다. 지난 주말에는 어딘가 조금 다른, 뭔가 이상하기도 한 콘서트를 봤다. 블랙핑크(지수, 제니, 로제, 리사)의 첫 서울 콘서트 얘기다.

지난 10~11일 블랙핑크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국내 단독콘서트를 열었다. 기자들에게 공개한 것은 첫날인 10일 공연이었다. 공연 시작 1시간 전 체조경기장 앞은 여느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가 열릴 때와 마찬가지로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공연 시작 시간인 오후 6시 1만 객석은 빈자리가 거의 없이 관중으로 꽉 찼다. 2시간 넘게 이어진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춤을 추면서도 라이브를 곧잘 해낸 블랙핑크 멤버들의 노력과 열정이 빛났고, 라이브 밴드를 동원한 점 등은 완성도를 높였다.

그런데 콘서트를 관람하는 객석 분위기는 일반적인 아이돌 콘서트 때와는 사뭇 달랐다. 발표한 곡은 적어도 히트곡은 많은 블랙핑크지만 멤버들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 ‘떼창’이 나온 일은 없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이 무대를 보여줄 때면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법이 따라오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없었다.

콘서트 중간중간 전광판에 멤버들의 영상이 나올 때 다른 콘서트였다면 최애 멤버를 향한 함성이 어김없이 터져 나왔겠지만 그것 역시 없었다. 상당수의 관객은 노래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박수로 환호를 보냈을 뿐 ‘팬’다운 열정은 내비치지 않았다. 객석 반응만 보면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보단 ‘열린음악회’에 가까운 모습이 연출됐다.

멤버들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것 같았다. 제니는 공연 중간 멘트로 “블링크(팬덤명), 안 신난 거 아니에요? 이렇게 이렇게 움직여야 되는데 이렇게 이렇게만 하네요. 여러분 돌아오지 않을 시간입니다. 모든 체력을 여기부터 여기까지 써서 즐겨야 돼요”라고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블랙핑크 멤버들은 여느 아이돌 그룹처럼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블링크”라고 팬덤 이름을 외치면서 관객과 소통하려 했다. 다만 ‘블링크’가 뭔지도 모르는 관객이 다수로 보인다는 점을 멤버들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 같았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랙핑크는 첫 국내 콘서트를 체조경기장에서 열었다. 아이돌 팬들이라면 대부분 알 테지만 체조경기장은 단순한 공연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1회 공연에 관객 1만~1만 2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인기 아이돌 그룹을 가르는 기준으로 여겨진다.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꿈의 공연장’으로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3~4일 이곳에서 콘서트를 연 세븐틴은 “세븐틴이 드디어 체조경기장에 입성했습니다”라며 감격했다. 지난 8월 사흘간의 콘서트를 이곳에서 연 비투비도 “체조경기장은 모든 아이돌의 꿈 같은 무대”라고 말한 바 있다.

웬만한 팬덤을 갖고 있는 그룹도 이곳을 매진시키기는 쉽지 않다. 올해 최고의 히트곡 ‘사랑을 했다’의 주인공 아이콘도 지난 8월 콘서트에서 체조경기장을 다 채우지는 못했다. 걸그룹에게는 그 벽이 더 높다. 핑클, S.E.S., 소녀시대, 카라, 투애니원이 차례로 입성했지만 자리를 다 채운 건 S.E.S.와 소녀시대뿐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블랙핑크의 체조경기장 공연을 앞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블랙핑크의 체조경기장 공연은 보통의 단독콘서트와 달리 후원사인 BC카드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었다. 이밖에 여러 기업이 공연을 후원했다. 각 회사가 이벤트 등 여러 행태로 뿌린 초대권 덕에 이틀간 2만 객석은 가득 찼다. 어린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 단위 관객이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업 후원 비중이 큰 공연인 탓에 멤버들과 관중 모두 민망한 분위기를 맞는 상황도 연출됐다. 공연 도중 멤버들은 후원사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기업 홍보를 했다. 제니는 “아시아 1위 결제서비스 기업”이라며 카드사 이름을 호명했다. 뜻밖의 멘트에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제니는 부끄러웠는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수 있게 홍보에 함께해 주셨습니다”라며 최대한 빠르게 말을 마쳤다. 지수는 “제 머리가 빛나고 있지 않나요”라며 샴푸 회사 이름을 말했고 이런 식의 소개가 한동안 이어졌다.

콘서트 도중 가수가 후원사 광고를 직접 하는 식의 공연이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섣불리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 콘서트와 관련해 2만 객석을 채웠다는 사실만 기억하거나 3세대 걸그룹 최초 체조경기장 입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앞서 많은 선배 아이돌 그룹들은 작은 공연장에서 팬들을 만나기 시작해 차차 더 넓은 무대에 섰다. 온전히 자신들을 위해 환호하는 팬들 앞에서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 감동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블랙핑크는 ‘꿈의 공연장’ 체조경기장에서 첫 콘서트를 열었다. 앞으로도 매번 기업 홍보를 겸한 콘서트를 열고 유료관객인 ‘블링크’들이 오길 바랄지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판단이 궁금해진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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