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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일용직, 죽음마저도 외로웠다

고시원 일용직, 죽음마저도 외로웠다

김정화 기자
입력 2018-11-11 22:24
업데이트 2018-11-1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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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 주는 이 없는 초라한 마지막 길… 추모도 ‘부익부 빈익빈’

종로 화재 사망 7명 모두 생계형 노동자
5명은 빈소조차 없어…분향소엔 낙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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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새벽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숨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 11일 사망자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지난 9일 새벽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숨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 11일 사망자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고된 노동에 지쳐 2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서 쓸쓸히 잠들었던 일용직 노동자들은 죽음마저도 외로웠다. 지난 9일 새벽 5시에 발생한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로 숨진 7명의 쓸쓸한 장례가 11일 모두 끝났다. 두 명의 시신이 안치된 빈소는 적막했다. 나머지 5명은 빈소조차 차려지지 않았다. 화재 현장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는 추모객 대신 낙엽만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 10일 밤 찾은 국립중앙의료원 조모(35)씨 빈소에서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슬픔을 나눴다. 조씨의 아버지는 “못난 부모를 만나 고생만 하던 큰아들을 가슴에 묻게 됐다”며 눈물을 쏟았다. 8년 전 서울에 올라온 조씨는 막노동과 우체국 비정규직으로 돈을 벌었다. 주거 비용을 아끼려다가 고시원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화재 이후 사망자들의 시신은 6개 병원으로 나뉘어 이송됐다. 그나마 빈소가 차려진 사망자는 조씨와 김모(56)씨 둘뿐이었다. 11일 두 고인의 발인이 끝나 빈소는 금방 철거됐다. 고대안암병원과 서울백병원에 옮겨진 장모(72)씨와 양모(57)씨는 장례 절차 없이 화장됐다. 유족들은 “처자식도 없고 오래전 고향을 떠나 친구도 없다”며 화장으로 고인을 떠나보냈다.

세브란스병원에 시신이 안치된 이모(62)씨의 빈소도 차려지지 않았다. 유가족 측은 병원 측에 장례 절차에 대해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곤사회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등 주거권 관련 시민단체들이 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 차려 놓은 임시분향소에도 쓸쓸함이 감돌았다. 바닥과 테이블에 놓인 국화꽃 40여 송이가 그나마 희생자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고 있었다. 추모객은 1시간에 한두 명에 불과했다. 경기 시흥에서 온 김모(69)씨는 “가난한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 초라하다”면서 “고인에 대한 추모도 ‘부익부 빈익빈’인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화마를 피한 생존자들은 이날 고시원을 찾아와 자신의 짐을 챙겨 어디론가 떠났다. 326호에 살다가 화재 당시 창문으로 뛰어내려 탈출한 홍모(58)씨는 “임시로 다른 고시원을 잡았다”면서 “대피하기 쉬운 2층, 창문이 있는 방을 요구했고 입주하자마자 대피 통로부터 살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층에 살면서 특별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면서도 “바로 앞방에 살던 일본인과 다리에 장애가 있던 어르신이 피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시원 원장 구모(69)씨는 고시원 앞 땅바닥에 앉아 통곡했다. 구씨의 남편 고모씨는 “건물주는 아직도 연락 한 통 없다”면서 “건물주가 스프링클러 설치에만 동의했어도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일고시원 입실료는 월 28만~32만원이다. 창문이 있는 방은 30만원대, 창문이 없는 방은 20만원대였다. 희생자 4명은 창문이 없는 구석진 방에 살다가 변을 당했다. 국일고시원 바로 앞에 있는 원룸텔의 입실료는 월 45만~50만원이었다. 주로 대학생 등 젊은층이 사는 이 원룸텔은 창문과 비상구, 스프링클러가 갖춰져 있다. 고시원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5만~10만원은 생사를 가르는 큰돈이다.

주거권네트워크 등이 연 기자회견에 참가한 김바울씨는 “이번 사고는 인재”라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는 현실, 집 같지도 않은 곳에서 사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18-11-1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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