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없는 고시원…등장 40여년 만에 ‘생계형 거주지’ 변모

입력 : ㅣ 수정 : 2018-11-0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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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 아끼려는 비정규직 노동자·취업준비생 몰려”
요즘 고시원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고시생 아닌 일반인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

9일 새벽 화재로 7명이 사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도 대다수의 거주자가 일용직 노동자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시원이 고시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집 없는 시민들의 ‘주거지’가 된 것이다. 특히 보증금 없이 월세만으로 머무를 수 있다 보니 월셋집을 구하지 못한 저소득층 시민이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고시원협회에 따르면 전국에 고시원은 총 1만2천691곳에 달한다. 10년전 4천여개 정도로 추산된 것과 비교하면 고시원 수가 3배가량으로 증가한 것이다.

현재 서울에만 6천779개 있으며 관악구에 1천55개가 몰려있다. 평균적으로 고시원 한 곳에 방이 40개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975년 서울대가 현재 위치인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전하면서 자연스레 고시촌이 형성됐다.

1975년 이전에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에는 고시원과 비슷한 하숙집이 있었지만, 1970년대 후반 사교육 과열을 막기 위해 정부가 입시학원을 사대문 밖으로 내보내면서 신림동에 본격적으로 고시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초기 고시원은 ‘돼지막’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무허가 하숙집에서 출발했다. 책상, 의자, 침구만 있는 1평(약 3.3㎡)가량의 방 1칸짜리였고, 난방연료로는 연탄이 아닌 나무가 사용됐다.

1990년대 들어서 사법·외무·행정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이용했던 고시원은 점차 일반 공무원 시험, 재수생들도 이용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황규석 한국고시원협회 회장은 “공무원 시험이 고시만큼 어려워지고, 전문화되면서 고시원에 3대 고시생이 아닌 학생들까지 오기 시작한 것”이라며 “이후 고시원이 점차 주거지의 한 형태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후반 국가고시 제도 변화로 고시생이 줄어들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주거지를 찾는 직장인들까지 고시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되고 사법고시가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고시원을 이용하는 고시생은 더욱 줄었다. 이러면서 고시원 수요는 일반인으로 더욱 확대됐다.

겨우 책만 볼 수 있을 정도의 기본 요건만 갖췄던 초기 고시원은 이제는 ‘풀옵션’을 갖춘 원룸으로 변모했다. ‘고시텔’이라는 이름으로 원룸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곳도 있다. 일반적으로 평균 입실료가 30만원이지만, 세탁기와 화장실이 있는 고시텔의 경우 입실료가 80만원가량 하기도 한다.

황 회장은 “고시원 방값이 수십만원하기 때문에 노숙자들이 쉽게 머물지는 못한다”며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잠시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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