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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1년] 가시지 않은 상흔… 시민들 일상 뒤흔드는 ‘여진’ 아직 진행중

[포항지진 1년] 가시지 않은 상흔… 시민들 일상 뒤흔드는 ‘여진’ 아직 진행중

김정화 기자
입력 2018-11-07 22:40
업데이트 2018-11-0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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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할퀴고 간 포항 1년 만에 가보니

거주 불가 판정 대성아파트 ‘흉물’ 그대로
흥해초교 두 동 철거…컨테이너서 수업


한동대 학생 “비상물품 가방 늘 가까이 둬”
1년 넘게 두 딸·부인과 텐트생활 40대도


8~9평 ‘희망보금자리’ 약 30여명 거주
“에어컨도 없이 폭염 견뎌… 올 겨울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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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全破) 판정을 받아 출입이 통제된 경북 포항시 북구 대성아파트. 건물이 기울어지고 기둥이 무너져 내린 채 방치돼 있다.
‘전파’(全破) 판정을 받아 출입이 통제된 경북 포항시 북구 대성아파트. 건물이 기울어지고 기둥이 무너져 내린 채 방치돼 있다.
1년 전 지진이 할퀴고 간 상처는 경북 포항시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북구 흥해읍의 대성아파트는 건물 전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담벼락과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은 쓰러져 있었고, 벽면은 온통 금이 갔다. 창틀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뒤틀려 있었고, 바닥에는 깨진 창문에서 떨어져 나온 유리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 흉물스러운 아파트는 지난해 11월 15일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두고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거주 불가’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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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피해를 입은 건물 두 동을 허물고 임시 컨테이너 교실을 설치한 흥해초등학교 모습. 5, 6학년 6개 학급이 이곳에서 수업을 듣는다.
지진 피해를 입은 건물 두 동을 허물고 임시 컨테이너 교실을 설치한 흥해초등학교 모습. 5, 6학년 6개 학급이 이곳에서 수업을 듣는다.
흥해초등학교는 지난해 지진으로 균열이 생긴 건물 두 동을 철거했다. 5, 6학년 6개 학급 학생들은 운동장에 임시로 설치된 컨테이너를 교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2년 뒤에야 새 건물이 완공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진 대피소였던 흥해체육관에는 2평(6.6㎡) 남짓 크기의 텐트 250개가 해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30명쯤 살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에는 주민들이 일터로 나갔는지 텐트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회사원 김준호(49·가명)씨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텐트에서 지내고 있었다. 김씨는 “태풍은 예보라도 있지만, 지진은 이사를 간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그저 하늘에 운명을 맡길 뿐”이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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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이후 마련된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 컨테이너 시설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지진 이후 마련된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 컨테이너 시설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여전히 텐트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은 자신이 살았던 다가구주택이 ‘소파’(기둥·벽체·지붕 등 주요 구조부가 50% 미만 파손) 판정을 받아 오갈 곳이 없는 상태였다. 일부 주민들은 붕괴 우려 속에서도 들어가 살고 있지만, 김씨 등 30명은 불안해 자신의 집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건물 붕괴 판정을 다시 하고 지원금을 높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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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거주자들은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20ℓ짜리 빈 물통을 대거 수집한 김씨는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 이불 속에 넣고 자면 아침까지 따뜻하다”면서 “체육관은 환기가 잘 안 되고, 난방도 안 되지만 무너질 수 있는 집보단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텐트 거주자 중에는 지금도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트라우마를 겪으며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지진 당시 외벽 벽돌이 와르르 무너지는 영상이 공개됐던 한동대는 건물 수리가 말끔하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학생들은 1년 전 악몽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한예은(22)씨는 “지난해 12월까지 여진이 계속되면서 새벽에 자다가 서너 번 정도 집을 탈출했고, 지금은 미세한 떨림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면서 “언제라도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외투를 껴입고 자거나 비상 물품을 챙긴 가방을 항상 가까이 두는 것이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진으로 주택이 반파 이상 피해를 입어 이주 대상이 된 가구는 총 793가구였다. 이 가운데 788가구(99.4%)가 이주를 완료했다. 남은 5가구는 이주가 진행 중이거나 개인 사정으로 이주를 못 하고 있다. 개인 주택에 사는 주민은 개별적으로 수리하거나 이사하면 되지만, 공동주택 주민들은 내부 수리를 할 때에도 이웃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이 때문에 지진 피해 아파트 대부분이 아직 철거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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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이후 수리를 마친 한동대 기숙사 모습. 위험물 낙하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외벽에 돌출된 처마를 설치했다.
지진 이후 수리를 마친 한동대 기숙사 모습. 위험물 낙하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외벽에 돌출된 처마를 설치했다.
흥해초 옆 공터에는 컨테이너로 된 ‘희망보금자리’라는 이름의 임시 이주단지가 있었다. 한 가구당 8~9평(26.4~29.7㎡) 정도를 사용했고, 현재 살고 있는 30가구 대부분이 1인 가구였다. 지난 1월 희망보금자리에 입주한 이순정(78)씨는 “대웅파크 1차 아파트가 전파 판정을 받아 이곳으로 넘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컨테이너로 지은 집이라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에어컨이나 보일러를 설치하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이씨는 “지난 여름에 폭염 때문에 생고생했는데, 겨울에는 또 얼마나 추울지 걱정된다”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자니 돈이 없고 여기에 계속 살자니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글 사진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18-11-0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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