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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 양심’ 처벌은 기본권 침해… 수감자 71명 구제 힘들 듯

‘소극적 양심’ 처벌은 기본권 침해… 수감자 71명 구제 힘들 듯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18-11-01 22:40
업데이트 2018-11-0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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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13명 중 9명 다수의견… 무죄 판단
양심의 진정성’ 어떻게 가늠할지 논란될 듯

반대 4명 “진정한 양심 존재 심사 불가능”

檢, 양심적 병역 거부자 무혐의 처분 전망
법원서 계류 930여건도 무죄 판단 가능성
일각선 “수감자들 특별 재심 등 구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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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오승헌(가운데)씨가 변호인단과 함께 대법정을 나서다 취재진에 소감을 말하고 있다. 오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종교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오승헌(가운데)씨가 변호인단과 함께 대법정을 나서다 취재진에 소감을 말하고 있다. 오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종교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대법원이 1일 종교와 신념이라는 ‘양심’이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14년 만에 판례를 변경한 데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가 국방의 의무라는 공익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소극성’에 주목했다. 현재의 병역제도 아래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하고 불이행에 따른 어떠한 제재도 감수하겠다는 이들의 입장이 헌법상 국방의 의무 자체를 적극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사실 이 지점까지는 이번 전합과 2004년의 전합이 같은 판단이었지만 ‘그렇다면 소극적 양심의 실현을 국가가 제한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정반대의 답을 내놨다.

이번 전합은 “국가가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과한 것에 대해 단지 소극적으로 응하지 않은 경우에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해 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상 병역의무의 가치를 뒤흔들지 않는 이상 개인들의 양심의 실현까지 국가가 제한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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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합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에도 맞지 않다고 봤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민주주의도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있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시는 그동안 인정되지 않은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신념도 포용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역설한 것이다. 권순일·김재형·조재연·민유숙 대법관은 “최소한의 소극적 부작위조차 허용하지 않으면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게 사실상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의견을 보태기도 했다.

하지만 ‘양심의 진정성’을 어떻게 가늠할지는 새로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합은 “양심이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기 인격적 가치가 파멸될 거라는 진정한 마음으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며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고 진실해야 하며 삶의 전부가 신념의 영향력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을 살펴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은” 신념을 지켜왔는지를 통해 ‘양심의 진정성’이 증명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반대(유죄) 의견을 표명한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진정한 양심의 존재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며 “다수의견이 제시한 사정들은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충분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검찰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27건을 비롯해 전국 법원에 계류 중인 930여건도 무죄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처벌이 확정되어 복역 중인 71명의 경우 구제가 힘들 수 있다. 대법 판결은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6월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도 처벌조항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면·복권하거나 특별 재심 등의 규정을 만들어서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2018-11-0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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