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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잃은 고려인 후손, 한국 언어정책 확대 기대”

“한글 잃은 고려인 후손, 한국 언어정책 확대 기대”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18-10-29 22:34
업데이트 2018-10-30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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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이주 고려인 인터뷰

연해주는 기회의 땅이고, 좌절의 땅이었으며, 재건의 땅이다.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수리스크 지역 고려인들. 왼쪽부터 최 마르가리타, 윤 스타니슬라브, 김 리지아, 홍 안톤, 최 나제즈다 알렉산드로브나,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김 엘라시나예브나, 강 레오니바실리비치.
우수리스크 지역 고려인들. 왼쪽부터 최 마르가리타, 윤 스타니슬라브, 김 리지아, 홍 안톤, 최 나제즈다 알렉산드로브나,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김 엘라시나예브나, 강 레오니바실리비치.
→1937년에 스탈린 강제 이주가 있었다.

-홍 안톤(81) 내가 그때 태어났다. 어른들에게 들으니 그때 모두가 갑자기 화차에 실렸다고 한다. 문도 없는 기차였고 죽으면 그냥 그 자리에 버리고 갔다. 카자흐스탄에 도착했을 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다. 그곳을 고려인들이 일궜다.

→강제 이주됐다가 다시 이곳에 온 이유는.

-최 마르가리타(69) 부모님께서 이곳이 참 살기 좋았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1953년 스탈린이 죽고 1955년부터 거주이전 자유가 생기면서 이곳으로 많이 돌아왔다. 사실상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 셈이다.

→타향 살이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최 나제즈다 알렉산드로브나(83) 부모님이 두 살 때 돌아가셨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나는 학위가 두 개이고 중·고교에서 교사로 56년 동안 역사·사회·정치를 가르쳤다. (훈장을 보이며) 러시아 정부에서 주는 ‘특별 교사상’도 두 번이나 탔다. 저기 계신 강 레오니바실리비치 선생은 ‘러시아 공로인 100인’에도 선정됐다.

→이 지역에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이 많다.

-최 마르가리타 안중근 의사 조카,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등이 러시아에 살고 있다. 독립운동으로 유명하신 분들은 고려인들에게 큰 자긍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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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오른쪽)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이 4월 참변이 있었던 왕바실재 언덕에서 고려인들을 위해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다.
소강석(오른쪽)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이 4월 참변이 있었던 왕바실재 언덕에서 고려인들을 위해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다.
→고려인으로서 대한민국에 바라는 것은.

-김 엘라시나예브나(72) 일제강점기에 우리는 한글을 잃었다. 스탈린 시대에도 우리말을 쓸 수 없었다. 고려인 3·4세대는 한국말을 쓸 수 있게 됐지만 미흡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에서 언어 정책을 좀더 확대해야 한다. 남과 북, 러시아 동포 모두 같은 피를 받지 않았나. 통일에 대한 기대가 크다. 다 같이 잘사는 그날이 왔으면 한다.

-최 나제즈다 알렉산드로브나 우리말을 못 쓰게 되면서 우리는 한국의 역사도 잘 모른다. 한국어로 된 역사책을 주면 우리가 보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러시아어로 역사책을 만들어 우리 후손에게 보급했으면 좋겠다.

글 사진 우수리스크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8-10-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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