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신상공개 vs 신상털기/박현갑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8-10-2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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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얼굴을 왜 가려 주나. 흉악범에게 인권을 앞세우는 건 사치다.” TV나 신문에 강력범죄자가 얼굴에 마스크를 쓰거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나올 때면 쏟아지는 여론의 질타다.
수사기관은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형사소송법상 비밀준수 의무에 따라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뜨거운 사건일수록 피의자 신상공개 여론은 거셌다. 지난 14일 발생한 서울 강서 PC방 살인 피의자 김성수(29)씨도 여론의 성화로 결국 공개됐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2009년 1월 연쇄살인범 강호순(49) 사건이 계기였다. 범죄 예방과 국민의 알권리 강화를 위해 언론에 강호순의 얼굴 등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국회는 다음해에 특정강력범죄처벌 특례법을 개정해 특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특정한 요건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 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죄를 저질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충분할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 등이다. 하지만 이런 공개가 유사범죄 예방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된 게 없다. 비공개의 경우 개별 언론이 일방으로 깨는 일도 없지 않아 제도의 실효성은 논란이다.

‘키보드 워리어’에 의한 신상공개도 있다. 사회적 공분이 발생할 사건들에 나타나는 사이버상의 ‘신상털이’다. 대중의 관심을 내세워 파헤치지만, 당사자들로서는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하는 사적 보복이자 사회적 매장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초등 6학년생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초등학교 여교사 사건이 보도되면서 인터넷에 해당 여교사 사진이라며 나돌았으나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다. 2년 전에는 유흥업소 여성들의 신상을 폭로하는 SNS 계정 ‘강남패치’가 문제가 됐다. 유흥업에 종사하지 않는데도 얼굴이 공개된 한 여성은 파혼까지 당했다. 지난 13일에는 아동학대 의심을 받은 30대 어린이집 교사가 ‘SNS 조리돌림’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신상털기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다.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자와 받은 자는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명예훼손죄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과 대중의 호기심 충족 욕구가 신상털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신상털이범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와 무죄 추정의 원칙 또한 누구나의 인권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다.
2018-10-24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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