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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남북 관계 진전’ 딜레마

정부 ‘남북 관계 진전’ 딜레마

박기석 기자
박기석 기자
입력 2018-10-23 21:58
업데이트 2018-10-2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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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강한 대북제재’에 기자재 반출조차 불가능

대북 수출 금지 품목 기계류·금속 확대
北, 산림회담서 南 소극적 태도에 불만
방북단 軍 수송기 이용 제재 위력 방증
‘면제 조항’ 활용땐 경협 초기 단계 가능


남북 관계가 정상 간 교류를 통해 순항하다 실질적 교류협력을 논의하는 단계에 들어서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라는 암초를 만난 모습이다.

경제 건설에 박차를 가하려는 북측이 남측에 경제 협력을 압박하는 반면 남측은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어도 대북 제재 때문에 선뜻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지난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린 산림협력 분과회담 종결회의에서 북측 대표단장인 김성준 국토환경보호성 산림총국 부총국장은 “민족이 바라는 기대만큼 토론됐다고는 볼 수 없다”며 합의 내용에 불만을 드러냈다. 남북은 산림협력회담에서 산림 병해충 방제사업과 양묘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지만, 북측은 ‘추진한다’는 선언에 그친 합의였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불만에 대해 남측도 고민이 깊은 모습이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총 10차례의 결의안 채택으로 현재 대북 제재는 ‘더이상 제재할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우 강력한 수준이다. 북측과의 사업 추진은 물론 북측에 기자재 반출조차 어렵다. ‘볼펜 하나만 북측에 줘도 제재 위반에 해당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남측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할 때 민간항공기가 아닌 공군 수송기를 타고 간 것도 대북 제재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방증한다. 민간항공사들이 나중에 미국에 제재 위반 꼬투리를 잡히면 사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까 평양 운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진다.

예컨대 최근 채택된 2017년 12월 2397호 결의안에서 북측에 공급·판매·이전할 수 없는 품목은 정제유(민생 목적 연 50만 배럴 이하 허용)와 원유(민생 목적 연 400만 배럴 이하 허용), 북측 민간항공기 수리에 필요한 것을 제외한 모든 기계류와 운송기기, 철광석, 철강, 여타 금속으로 확대됐다. 북측과의 합작 사업도 2375호 결의안에서 설립과 유지, 운영이 금지됐고 기존 합작사는 120일 안에 폐쇄하도록 했다.

이에 남측이 철도·도로 연결 사업과 양묘장 현대화 사업 등 경제협력을 추진하려고 하더라도 북측에 기자재를 반출하지 않는 사업 준비 단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철도·도로 연결 사업의 경우 본격적인 사업 추진이 아닌 사업 시작을 알리는 세리머니 성격이 강한 착공식과 북측 현지 공동조사만 일정을 잡은 상황이다. 하물며 현지 공동조사도 북측에 대북 제재 대상 품목인 열차 등을 반출해야 하기에 제재 위반이라는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을 거듭 피력한 것도 현재 상태로는 남북 관계의 실질적 진전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결의안에는 제재 면제 조항이 있어 이를 활용하면 남북 경제협력을 초기 단계까지는 진전시킬 수 있다.

2375호 결의안에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원회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의 상기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들의 업무를 촉진하거나 관련 결의의 목표와 일치하는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필요한 면제라고 결정하는 경우, 위원회는 관련 결의들에 의해 부과된 조치들로부터 어떠한 활동도 사안별로 면제할 수 있음을 결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아울러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는 지난 8월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면제 관련 가이드라인’을 채택했다. 이에 남측은 지난 8월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앞두고 북측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개·보수를 위해 제재 면제를 신청해 수락받은 바 있다.

합작사업 역시 비상업적이고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 인프라 사업의 경우 대북제재위의 승인을 받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남북 경협을 본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 완화가 필수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2018-10-2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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