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집 판결’ 규탄, 명백한 2차가해” 맞불집회 여는 남성들

입력 : ㅣ 수정 : 2018-10-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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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27일 ‘규탄집회’ 맞은편서 항의시위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여성을 갑자기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상식적이냐고 묻는데, 오히려 그런 비상식적 행동이 왜 많이 일어날까 물어야죠. ‘유죄추정 규탄시위’는 명백한 ‘2차 가해’입니다.”

곰탕집에서 다른 손님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던 남성이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 “사법부가 ‘유죄추정’으로 가정의 행복을 빼앗았다”며 시위를 열겠다고 나선 이들이 있다. 이달 27일 혜화역에서 ‘1차 유죄추정 규탄시위’를 열 예정인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다.

반면 당당위의 시위를 ‘곰탕집 사건을 포함한 모든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규정하고, 같은 날 당당위의 맞은 편에서 ‘2차 가해 규탄시위’를 열겠다는 이들도 있다. 페미니즘 소모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이다.

남함페 운영진은 시위를 2주 앞둔 12일 연합뉴스를 만나 ‘맞불집회’를 여는 이유에 관해 약 2시간에 걸쳐 인터뷰했다. 인터뷰에는 허민영(34) 씨와 활동명 ‘니제’, ‘회색세포’, ‘며니’ 등 4명이 참여했다.

남함페는 결성한 지 1년이 넘은 페미니즘 소모임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여 페미니즘 이슈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오픈 채팅방에서는 페미니즘 소식을 공유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써서 올리기도 한다.

시민단체보다는 동호회에 가까운 남함페가 처음으로 집회를 열게 된 이유를 묻자 ‘니제’ 씨는 “(당당위 집회 소식을 보고) 황당했다”고 한마디로 말했다.

그는 “성범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 번이라도 자세히 봤다면, 여성에게 얼마나 불리한 과정이고 2차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면서 “(여성들이 겪어온) 잘못된 판결에는 여태 침묵하다가 (곰탕집) 사건 하나에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황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민영 씨는 “미투 운동 때도 그랬지만, (당당위의 집회도) 남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연결된 것 같다”면서 “자신들이 가해자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내면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당당위에 공감하는 목소리는 일견 커 보인다. 당당위 측은 경찰에 집회를 신고하면서 예상 인원으로 1만5천명을 적어냈다. 주로 10∼30대 남성이 당당위 집회를 반기고 있다. 당당위 운영자도 20대 후반 남성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최근 많은 남성이 ‘안티페미니즘’ 경향을 띠는 이유에 대해 ‘니제’ 씨는 “지금 청년 세대는 ‘차별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례로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는 사회 구조적 성차별이 있지 않나. 이 때문에 여성이 경제활동을 못 하는 만큼 남성이 일을 더 하게 된다. 여성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구조적 성차별의 비용이다. 그런데 한국 남성은 이게 ‘여성이 요구하는’ 역차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남함페의 남성 운영진은 어떻게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게 되어 ‘남성 페미니스트’가 됐을까. 이들은 “강남역 살인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허민영 씨는 “강남역 사건 이후 등장한 ‘미러링’은 사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에게 ‘한 대 맞았다고 한 대 치면 뭘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친구가 ‘오랫동안 천대 만대 맞은 사람들이 허공에 주먹질 한 번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 후로 많은 것이 ‘전복’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성은 여성권 문제에 ‘당사자성’이 없으므로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보는 페미니즘의 갈래도 있다. 남함페 회원들도 이런 지적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면서 “남페미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인 ‘며니’ 씨는 “남페미가 안티페미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안티페미 남성은 여성이 아무리 말해봤자 여성이 남성보다 낮다고 생각하니까 말을 듣지 않으므로 같은 남성이 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남페미가 페미니즘의 주가 돼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냈다.

‘니제’ 씨는 “남성 문화에서 성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심한 수준의 말이 오간다. ‘남톡방(남성끼리의 카톡방)’이 한 예다. 그런 데서 내용이 유출되면 ‘배신자’ 취급을 하는데, 그런 배신자가 있어야 견고했던 남성권력에 균열이 생긴다. 남성 문화를 고발하고 배신하는 남성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제’ 씨의 말처럼 남함페는 ‘배신자’ 남성을 기꺼이 자처한다. 남함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이따금 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이 달리기도 한다. 이런 점을 우려해 남함페는 오는 27일 시위에서 얼굴을 가리기 원하는 참가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줄 계획이다.

남함페는 오프라인 활동을 점점 늘려갈 예정이다. 반(反) 성폭력 스티커를 남자화장실 등 공공장소에 붙이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고, 팟캐스트도 만들고 있다.

‘남성의 페미니즘’이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내용은 서로 달랐지만 하나같이 묵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허민영 씨는 “반성”이라고 짧게 말했고, ‘니제’ 씨는 “애써 외면해온 이야기”라고 답했다. ‘며니’ 씨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것”, ‘회색세포’ 씨는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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