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군부독재 그늘 서린 외딴 예술섬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군부독재 그늘 서린 외딴 예술섬

입력 2018-10-03 17:34
업데이트 2018-10-03 18:29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22> 서초동(우면산의 가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1회 정동(대한제국을 기억하며)편과 제22회 서초동(우면산의 가을)편이 2회 연속 진행됐다. 추석 연휴 특별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이번 미래투어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26일 정동과 덕수궁 일대, 29일은 서초동 우면산 일대에서 각각 열렸다. 한가위 연휴와 맞물린 황금주말을 맞아 서울미래유산의 향기를 맡고자 하는 참가자들이 대거 몰렸다. 사전 온라인 예약이 일주일 전에 매진돼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시스템 40개가 동났다. 예약 없이 현장을 찾아온 러시아와 루마니아 출신의 금발머리 외국인 여학생 2명은 진행자가 양보한 이어폰을 사이좋게 사용했다. 2회 차를 1개 지면에 갈무리했다.
이미지 확대
우면산 둘레길에 개미취가 지천으로 피어 깊어 가는 가을을 절감하게 한다. 시인 안도현이 시 ‘무식한 놈’에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절교를 선언했듯 개미취와 쑥부쟁이, 구절초는 보통 들국화라고 통칭되고 있다.
우면산 둘레길에 개미취가 지천으로 피어 깊어 가는 가을을 절감하게 한다. 시인 안도현이 시 ‘무식한 놈’에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절교를 선언했듯 개미취와 쑥부쟁이, 구절초는 보통 들국화라고 통칭되고 있다.
우면산 투어는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 앞을 출발, 우면산 둘레길을 3분의1쯤 돈 뒤 국립국악원으로 내려와 예술의 전당에서 마무리했다. 서울미래유산은 국립국악원과 예술의 전당 2곳이다. 해설을 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국립국악원에서 국악 반주에 맞춰 걸어 보기를 통해 우리 가락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또 ‘변죽’, ‘살판’, ‘단골’ 등 국악에서 유래한 용어를 OX로 푸는 퀴즈놀이로 흥을 돋웠다. 이날의 피날레는 분수쇼였다. 낮 12시 정각 예술의 전당 분수대 앞에서 일정이 끝남과 동시에 참가자를 위한 분수쇼가 시작된 것이다. 조용하던 분수에서 갑자기 물길이 치솟자 다들 놀랐다. 미리 예약한 바리톤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에 맞춰 분수는 춤을 췄다. 참석자들은 멋진 마무리를 선사한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에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이미지 확대
예술의 전당을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중앙)와 음악당(왼쪽)이 마치 갓과 부채 모양으로 보인다. 오른쪽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다. 전통 디자인을 강조하려다 양복 정장에 갓을 쓰고, 부채를 든 격이라는 비웃음을 샀다.
예술의 전당을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중앙)와 음악당(왼쪽)이 마치 갓과 부채 모양으로 보인다. 오른쪽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다. 전통 디자인을 강조하려다 양복 정장에 갓을 쓰고, 부채를 든 격이라는 비웃음을 샀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공간인 예술의 전당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88 서울올림픽의 산물이다. 잠실 주경기장,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코엑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등 거대 건축물을 통해 업적을 남기고 싶었던 군사정권의 욕망이 스며 있다. 당시 공연과 전시가 한곳에서 펼쳐지는 미국의 링컨센터와 영국의 바비칸센터 같은 복합문화시설이 유행하자 이를 본떴다. 민족정체성을 의미하는 국악과 서예 관련 시설이 반드시 포함돼야 했다. 예술의 전당의 영문 이름이 서울 뮤지엄이 아니라 서울 아츠 센터로 작명된 까닭이다.
이미지 확대
국립국악원 실내공연장 예악당 로비에 설치된 건고(建鼓). 네 마리의 호랑이가 십자형 발을 형성하고 있고, 꼭대기에 학이 날갯짓을 하는 이 큰 북은 합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희귀한 국악기 중 하나다.
국립국악원 실내공연장 예악당 로비에 설치된 건고(建鼓). 네 마리의 호랑이가 십자형 발을 형성하고 있고, 꼭대기에 학이 날갯짓을 하는 이 큰 북은 합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희귀한 국악기 중 하나다.
예술의 전당이 우면산 자락에 자리잡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5만평 이상의 넓은 부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1차 후보지로 꼽혔던 강북의 서울고교 이전 부지(경희궁 터)는 좁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2차 후보지로 서초동 정보사령부 부지가 유력했지만 막강한 군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3차 후보지는 뚝섬 서울숲 안 삼표레미콘 부지였는데 강 건너 금호동 달동네가 보여 조망이 좋지 않은 점 때문에 보류됐다. 마지막 후보지로 서울시청을 지으려고 남겨 뒀던 대법원 자리도 대상에 올랐지만 부지가 3만평에 불과했고 용도 변경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미지 확대
서울미래유산인 국립국악원 야외 연희마당에서 ‘전국초등학교꿈나무 국악관현악 축제’ 예행연습이 열리고 있다.
서울미래유산인 국립국악원 야외 연희마당에서 ‘전국초등학교꿈나무 국악관현악 축제’ 예행연습이 열리고 있다.
‘서초꽃마을’로 불리던 우면산 자락이 선택된 정확한 경위는 남아 있지 않다. 단행본 ‘강남의 탄생’(2016, 미지북스)에서 저자는 ‘1983년 무렵 전두환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가다가 우면산 기슭을 보고 “저기 널찍하고 좋겠네”라는 한마디에 결정됐다고 한다’는 부지 선정 비화가 전한다. 최고 권력자의 통치행위는 대개 이런 식이다. 문화 불모지였던 강남 지역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작용한 것 같다. 우면산 자락 7만평에 오페라하우스, 음악당, 한가람미술관, 국립국악원, 서예박물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까지 총망라한 복합문화단지는 난공사와 설계 변경 탓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공기를 맞추지 못하고 1993년에야 최종 완공됐다. 지하철로 연결되지 않아 대중과 유리된 ‘고급예술문화의 섬’이다.
이미지 확대
‘서초구의 허파’인 우면산은 배를 깔고 졸고 있는 소를 닮았다는 지명 유래가 따른다. 관악산 줄기의 같은 흙산이지만 청계산은 618m인데 반해 우면산은 293m로 낮고 순한 산세를 지녔다. 꼭대기 소망탑은 해돋이 명소다. 정상에 오르면 예술의 전당부터 남산타워는 물론 북한산 능선도 조명권이다. 소의 등에 해당하는 능선에 오르면 우거진 잣나무 숲에서 나오는 솔향이 코를 찌른다.

2011년 7월 27일을 기억하는가. 300㎜가 넘는 100년 만의 폭우가 쏟아지자 우면산이 무너졌다. 산사태로 18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대피한 이 사건을 두고 ‘우면산의 복수’라는 말이 나돌았다. 경부고속도로와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남부순환로가 산줄기를 절단, 분리했고 터널이 관통했다. 예술의 전당을 비롯해 서울시소방학교, 서울시인재개발원, 국민임대주택단지 등이 온통 헤집어 놓았다. 무분별한 등산로 개발도 한몫했다. 쉽게 부서지는 지질에 심각한 단층 손상을 입은 것이다. 우면산 등산로 곳곳에는 인공계곡과 나무다리가 유달리 많이 눈에 띈다. 큰 비가 와도 흙더미가 휩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콘크리트로 계곡을 파서 사방공사를 한 아픈 상처다.

우면산 둘레길에는 가을꽃인 들국화가 만발해 깊어 가는 가을을 실감하게 했다. 우리는 보통 들국화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들국화는 크게 구절초, 개미취, 쑥부쟁이로 구별된다. 안도현 시인은 ‘무식한 놈’이라는 시에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이 들길 여태 걸어 왔다니/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라고 스스로를 타박했다. 우면산 들국화는 개미취여서 다행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일정:서울의 문학2(이상의 날개)

●일시:10월 6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사직동주민센터 앞(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서 300m 직진)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2018-10-04 19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