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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꽉찬 수도꼭지, 틀어막는 정부, 튀는 투기세력

물 꽉찬 수도꼭지, 틀어막는 정부, 튀는 투기세력

신성은 기자
입력 2018-09-09 10:08
업데이트 2018-09-0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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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 장기 저금리에 넘치는 유동성…‘똘똘한 한채’에 대출규제 백약이 무효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집값이 연일 ‘불패 신화’를 써 내려가는 것은 풍부한 유동성이 ‘마르지 않는 잉크’ 구실을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경기 침체와 고용 부진을 타개하려고 기록적인 장기 저금리로 유동성을 대량 공급했지만, 정부·당국의 의도와 달리 고삐 풀린 돈은 부동산 시장으로만 흘러들어 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2016년 6월 연 1.25%로 인하된 기준금리는 1년 4개월 동안 유지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지난해 11월 1.50%로 한 차례 오른 게 전부다.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높은 역전 현상마저 나타났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은 부동산 시장에 유입됐다. 이런 경향은 이어질 전망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 부동자금(현금, 요구불·수시입출식 예금, 머니마켓펀드, 양도성예금증서, 종합자산관리계좌, 환매조건부채권 등)은 지난 6월 말 1천117조4천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한은은 지난달 31일 ‘고용 쇼크’와 경제 심리 악화 등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소비와 투자가 여전히 부진해 연내 인상이 물 건너갔다는 관측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교보증권 백광제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연내 기준금리 동결이 유력시되는 상황”이라며 “이는 시중 유동성의 부동산 시장 유입을 유발해 (서울) 도심 내 주택 가격의 추가 상승을 이끌 것”이라고 예상했다.

장기 저금리로 넘치는 유동성은 ‘물이 꽉 찬 수도꼭지’에 비유될 수 있다. 그대로 틀어두면 부동산 시장으로 흐를까 봐 걱정된 당국은 급한 대로 손으로 틀어막고 있다. 담보인정비율(LTV·Loan To Value ratio)과 총부채상환비율(DTI·Debt To Income ratio) 같은 대출규제가 대표적이다.

본래 LTV와 DTI는 부동산 경기를 조절하려는 게 아니라,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유지하려고 도입된 규제다. 담보물의 가치나 차입자의 상환능력에 견줘 대출이 지나치게 많으면 나중에 금융회사가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시절인 2014년 8월 LTV를 70%로, DTI를 60%로 각각 풀었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노골적 조치였다. LTV·DTI 완화와 맞물린 기준금리 인하는 ‘유동성 잔치’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8·2 대책’에서 LTV와 DTI를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40%(다주택자 30%)로 낮췄지만, 이미 때가 늦은 데다 풀릴 대로 풀린 유동성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정부 대책이 다주택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자 강남 3구와 여의도·용산·목동 등지의 ‘똘똘한 한 채’가 더 주목받게 됐고, 대출규제를 덜 받는 1주택에 부동자금이 쏠렸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LTV·DTI를 강화하고, 임대사업자대출·전세대출을 통한 ‘우회 대출’을 차단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Debt Service Ratio)이나 임대업 이자상환비율(RTI·Rent To Income ratio)을 도입·강화하는 등의 대책은 ‘번지수’가 잘못된 규제라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임대사업자대출에 LTV를 신규로 도입하고, 임대업 RTI를 강화하거나 전세대출 보증 공급을 까다롭게 하는 등의 대출 규제책을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에 담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쳐 조여놓은 대출규제에도 투기 수요가 사방으로 튀는 상황에서 대출을 더 틀어막아 투기를 잡는 게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나온다.

이제 와서 내놓는 대출규제는 이미 시장에 돈을 풀어놓고, 앞으로는 덜 풀겠다는 의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존의 유동성을 잡지 않고 신규 유동성 공급만 특어막으려다보면 애꿎은 피해자만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금융이 아니다”며 “세제나 공급 등의 측면에서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저금리 상황에서 투기 심리를 진정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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