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 미쳤다”…대학생도 갭투자

입력 : ㅣ 수정 : 2018-09-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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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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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집값요? 미쳤다는 말밖에 더 있나요. 지난달에 대학생들이 2천만∼3천만원씩 들고 갭투자를 하겠다고 찾아오는데 기가 막혔어요. 취직도 어렵고 미래는 불투명한데 집값은 계속 오르니 전세 끼고 소형 아파트라도 하나 사놓아야 안심이 되겠다는 거에요. 15년 중개 경력에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주말 기자와 만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D아파트 단지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최근 시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서울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이곳에 갭투자 수요가 확연히 늘기 시작한 것은 서울 집값이 불붙기 시작한 올해 6월부터다. 투자수요가 대거 몰리면서 아파트값이 한 달여 만에 2억원 가량 급등해 전용 84㎡ 아파트값이 7억원에 육박한다.

갑자기 거래가 늘자 집주인들은 내놨던 물건을 거둬들여 매물은 품귀현상을 빚고, 호가는 부르는 게 값이다.

이 대표는 “이곳은 서울에서도 집값이 싼 동네였는데 청량리를 비롯해 주변에 재개발이 진행되기 시작하자 이곳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소액 투자자들이 몰려왔다”며 “거래 한 건이 성사되면 호가는 그 자리에서 3천만원, 5천만원씩 뛰어버린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형의 경우 전세를 끼고 3천만∼5천만원 있으면 매수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매매-전세가격 차이가 2억원 이상 벌어져 소액 투자도 힘들어졌다”며 “정작 이 동네에 전세 살고 있는 실수요자들이 집을 사고 싶어도 가격이 너무 올라 속상해한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시장이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시장이 미쳤다”,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이제 강남뿐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들려온다. 상승세는 서울을 넘어 수도권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역대급 규제 대책으로 불린 ‘8·2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을 때 서울 집값이 지금처럼 뛸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시장 상황보다 “규제가 과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딱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지역 경제가 무너진 지방 아파트값은 속절없이 하락하는데 서울과 일부 수도권 주택시장은 정부 규제를 비웃는다.

“서울 집값은 대책만 나오면 더 오른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들리고, 이로 인해 서울-지방 주택시장의 양극화와 지역별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다급해진 정부와 청와대, 정치권은 조만간 집값 안정대책을 추가로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정청은 그 과정에서도 각기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내며 불신을 키우고 있다.

◇ ‘규제의 역설’, 서울 집값 누르니 더 올라…“전국구 투기장”

서울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연일 신고가 행진을 벌이고 있다.

8·2부동산 대책과 올해 4월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 이후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집값은 지난 6월 보유세 개편안이 공개되고, 연이어 터진 박원순 서울시장의 여의도·용산 통합개발 발언을 계기로 활화산이 됐다.

종부세 증세가 다주택자와 초고가주택에 한정되고 강도도 예상보다 약하다는 말이 나오면서 그간 시장을 관망하던 수요자들이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저가 매물을 사기 시작했다.

박 시장이 여의도를 신도시급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꿈틀거리던 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8·2대책 직후 강력한 수요억제책으로 억눌려 있던 수요가 매수세로 폭발한 이른바 ‘용수철 효과’다.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공급면적 119㎡는 올해 2월 역대 최고가였던 20억1천만원을 경신해 최고 20억6천만원에 매물이 나온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9㎡는 최근 30억원까지 팔리며 30억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달 초 이 아파트 전용 59㎡가 24억5천만원에 팔렸다는 소문은 허위 정보일 가능성이 커졌지만 이런 추세라면 ‘3.3㎡당 1억원’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강남은 물론 강북과 서울 근교까지 안 오른 곳이 없다. 지난달 말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광명시 철산·하안동 일대는 최근 한 달 새 아파트값이 1억∼2억원이 급등했다. 연일 집값이 오르니 투자에 관심 없던 젊은 직장인과 학생들까지 조급한 마음에 집을 사러 나선다.

광명시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부동산 카페나 유튜브의 재테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수천만원으로 갭투자가 가능한 아파트라고 특정 단지를 찍어주면 인터넷 기사 링크를 타고 달려드는 댓글 부대들처럼 투자수요들이 몰려든다”며 “재건축이 불가능한 단지도 사두면 돈 된다고 찾아오는 데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봐도 서울의 집값 상승세는 비정상적이다. 정부가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고 강력한 규제망을 펼친 서울 집값만 급격하게 올랐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8·2부동산 대책 이후 지난 7월까지 1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6.76%가 올랐다. 대책 이전 1년간 4.74% 오른 것보다 되레 상승폭이 커졌다.

반면 수요 규제가 거의 없는 지방 주택시장은 곳곳에서 집값 하락으로 신음하고 있다.

지방의 아파트값은 8·2대책 이전 1년간 부산, 세종, 강원 등의 상승세에 힙입어 0.01% 올랐으나 8·2대책 이후에는 1년간 2.02% 하락하며 양극화가 심화했다.

특히 지역 경제가 무너진 경남과 울산의 아파트값은 8·2대책 이후 1년간 각각 7.02%, 6.18% 하락했고, 공급과잉 후유증을 겪고 있는 충남·충북도 3.99%, 4.22% 떨어졌다.

지방의 주택 미분양은 줄어들지 않고, 할인 분양에다 단지째 통매각, 아파트 계약을 하면 일부 현찰로 돌려주는 ‘페이백’ 분양까지 등장했지만 정부는 온통 서울 집값 잡기에만 올인한 채 지방 주택시장엔 무관심하다.

지방 부자들은 집값이 안 오르는 지역 아파트 대신 강남 요지의 재건축이나 랜드마크 아파트를 사러 ‘원정투자’를 오면서 서울이 전국구 투기장이 되고 있다.

◇ 주택이 신분을 가르는 사회…박탈감 커진 서민들, 다급해진 정부

서울 집값이 급등하면서 국민의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집을 판 사람은 잔금을 받기도 전에 집값이 더 올라 우울하고, “집값은 꼭 잡겠다”는 정부 말만 믿고 기다려온 무주택자들은 갈수록 ‘배신감’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집값 얘기를 나누며 허탈해하고 한편에선 인터넷 동호회, 카카오톡 단톡방에 모여 집값 담합을 한다.

이런 사회 현상을 빗대 최근 주택시장에는 ‘하우스 디바이드’(House Divide)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정보화 격차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로 사회가 극단적으로 양분화할 수 있다는 ‘디지털 디바이드’처럼 주택시장에서도 똑같이 주택의 유무, 집값 격차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번져나갈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양대 교육학과 정문주 겸임교수는 “하우스 디바이드는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 당시 나라의 분열과 갈등으로 미국이 양극단으로 분리되는 것을 묘사하며 처음 사용한 용어”라며 “주택시장에 이런 극단적인 용어가 등장한 것은 그만큼 시장의 양극화가 심하고, 이것이 곧 계층화로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진 것도 경제·민생현안에 대한 불만과 함께 좀처럼 잡히지 않는 집값 문제도 한 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와 여당, 청와대는 최근 앞다퉈 집값 안정을 위한 해결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서로 조율되지 않고 있는 말들이 쏟아지며 되레 시장에 혼란을 키우고 있다.

전세자금 대출 규제 번복, 여의도·용산 개발 보류,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축소, 공급 확대 정책 선회 등 정부 방침이 수시로 바뀌며 정부 스스로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이르면 금주 중 정부 합동발표 형태로 공개될 추가 대책은 강도가 매우 세질 전망이다. 8·2대책 이후 이어진 정책 혼선을 만회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수요규제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를 큰 폭으로 인상함은 물론 단기 투기를 막기 위한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과 대출 규제가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과거부터 부동산에는 ‘백약이 무효’라는 학습효과가 퍼진 주택시장에 수요규제가 얼마나 장기간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시장에선 “수시로 정책이 바뀌니 뭘 내놔도 못 믿겠다”는 불신이 팽배해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주문한다.

건국대 부동학과 조주현 교수는 “정부가 공급 부족을 해결하는 게 쉽지 심리적 배 아픔까지 해결해주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집값은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되 서울 강남만큼 좋은 인프라를 갖춘 곳에 주택을 공급해 수요를 분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김호철 교수는 “집값이 이미 많이 오른 상태에서 정부는 당장 강력한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라는 ‘정공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만 단기 해법의 유혹에 빠지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장에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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