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첫 비엔날레 수상으로 우리 미술 세계에 알린 전수천 작가 별세

입력 : ㅣ 수정 : 2018-09-0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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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뇌출혈로 다섯 차례 재수술
국제 비엔날레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수상하며 우리 미술을 세계에 알렸던 설치미술가 전수천 작가가 4일 새벽 1시 20분쯤 별세했다. 71세.
2015년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 참가 당시의 전수천 작가 2015년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중국 횡단열차(TCR)와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이용해 러시아, 중국, 몽골,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 등 6개국 1만 4400㎞를 19박 20일간 달리는 대장정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에 참여했던 전수천 작가는 철의 실크로드를 달리는 심경을 3회에 걸쳐 글과 사진, 그림으로 서울신문에 보내왔다.

▲ 2015년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 참가 당시의 전수천 작가
2015년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중국 횡단열차(TCR)와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이용해 러시아, 중국, 몽골,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 등 6개국 1만 4400㎞를 19박 20일간 달리는 대장정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에 참여했던 전수천 작가는 철의 실크로드를 달리는 심경을 3회에 걸쳐 글과 사진, 그림으로 서울신문에 보내왔다.



전 작가는 지난해 12월 발병한 뇌출혈이 재발하며 올 4월까지 다섯 차례 수술을 받았다. 부인 한미경 씨는 이날 오전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남편이 병세가 좋아질 줄 알고 주변에 알리지 않았으나 후유증을 이기지 못했다. 병원에서 투병하며 작품을 챙겨보낸 지난 6월 영국 런던 주영한국문화원 전시가 마지막 전시가 됐다”고 말했다.

전 작가는 한국인으로는 처음 이탈리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우수상에 해당하는 특별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전북 정읍 출신인 고인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포기했다가 뒤늦게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베트남전에 참전해 모은 돈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 무사시노 미술대 회화과를 수료하고 와코대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페인트칠, 초상화 그려주기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미국 뉴욕의 프랫 대학원을 다녔다.
전수천 작가

▲ 전수천 작가

고인은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처음으로 한국관이 마련된 1995년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특별상을 수상했고, 그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도 선정됐다. 당시 고인은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뒤 “우리 목소리가 담긴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면서 “서구적인 영향에서 벗어난 동양적, 한국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평가받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2005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7박 8일 동안 흰 천으로 덮은 열차를 타고 북미 대륙을 횡단하는 ‘움직이는 드로잉-영원한 민족 비전의 선’ 프로젝트를 펼치며 한국 미술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고인은 또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동시에 미술원 교수로 임용돼 2011년 퇴임 때까지 후학을 길러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미경 씨가 있다. 빈소는 전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6일 오전 8시. (063)250-2452.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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