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

입력 : ㅣ 수정 : 2018-10-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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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발굴 해외소설 ‘황제 납치 프로젝트’
서울신문은 대한제국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찾았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조선과 일본에 머물며 직접 취재해 쓴 이들 소설에는 고종의 해외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대한제국이 배경인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먼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

<1회>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사진. 서울신문 DB

▲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사진. 서울신문 DB

내가 조선의 옛 황제(고종) 퇴위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은 아니다. 그토록 온 세상이 원하던 소리(조선 독립)를 듣지 못하고 영혼의 자유를 얻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스티븐스(더럼 화이트 스티븐스·1851-1908)는 더더욱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이 쏜 총에 맞아 죽었으니까.

당시 일본은 스티븐스 암살 사건을 빌미로 한국인들을 잔인하게 보복 살해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오직 소녀와 나 둘 뿐이다.

지난 겨울 나는 상하이 애스터하우스 호텔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나는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게 영화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말에 몸서리치듯 괴로워하더니 가쁘게 숨을 쉬며 말했다.

“빌리, 정신 나갔어? 이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나 다름없어.”

지금(이 소설이 출간된 1912년 12월) 나는 미국으로 돌아와 브루클린의 고급 아파트에 산다.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도 있는 꽤 괜찮은 곳이다. 하지만 이렇게 편안하게 사는 것이 조금 지루하기는 하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복도에 있는 저 ‘자메이카 머큐리’(사람을 닮은 동물 조각상으로 추정)는 하세가와(당시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관으로 훗날 조선의 2대 총독이 되는 하세가와 요시미치·1850~1924)의 충실한 심복(당시 일본 공사관원이자 훗날 외무성 통상국장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1868~1911)를 닮은 것 같은데...

나는 왜 뉴욕에 살면서도 낡고 오래된 서울에서의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는걸까. 나는 왜 동북아 외교 정글에 갇혔던 기이한 늙은 황제 때문에 목숨을 잃은 3명(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민영환,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를 신문에 쓰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창밖을 내다보니 아래층에 사는 웬 미친 여자가 자기 사진을 보며 3시간째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허름한 옷 차림의 남자 하나는 술에 잔뜩 취해 소리를 지르고 있고...이윽고 내 머릿 속 커튼이 열리며 오래된 기억이 서울의 케케묵은 먼지 쌓인 그곳(이 소설의 시작점인 서대문 애스터하우스 호텔)으로 데려다준다. 테러와 위험이 가득했던 그 때(1905년 10월~11월 을사늑약 체결 전후) 조선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던 모험을 다시 한번 감행하고 싶어졌다. 나는 이곳에서 평범한 시민이지만 한때는 조선 왕실의 비자금 관리처 ‘골든엄브렐라’(소설 속 가상의 대한제국 세관조직)의 책임자였고 소녀는 조선 황제 납치의 주범이었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가 실린 미국 포퓰러 매거진 1912년 12월 하반호 표지. 포퓰러 매거진 제공

▲ ‘황제 납치 프로젝트’가 실린 미국 포퓰러 매거진 1912년 12월 하반호 표지. 포퓰러 매거진 제공

우선 여러분에게 베델이 누구인지부터 알려주고 싶다. 그는 말이 많고 황소고집을 가진 키 작은 영국인이었다.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러일전쟁이 끝난 ‘슬픔의 땅’ 조선을 점령한 일본인들의 머리에 구멍을 내려는 것 하나뿐인 듯 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른다. 나가사키 아니면 고베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베델은 자신이 발간하는 네 페이지짜리 영자신문 코리아데일리뉴스(1904~1909)가 있는 ‘그림자의 도시’ 서울에 살았다. 그는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이에 아랑곳없이 조선인 조판공이 만든 활자로 신문을 찍어 일제의 만행을 강하게 비난했다.

하세가와의 부하 충실한 심복 하기와라는 “베델이 러시아 비자금으로 신문을 만든다”라고 악의적인 소문을 냈다. 하지만 나는 베델이 진심으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또 자신의 펜으로 일본 제국주의을 무너뜨리겠다고 자신하는 그의 무모함도 잘 알기에 하기와라의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날카로운 성격의 ‘대영(大英)남자’가 어떻게 신문 하나로 하세가와와 메가타(탁지부 고문으로 대한제국 화폐개혁을 이끈 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 조선 황제의 일본인 고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곤 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일제가 대한제국 백동화를 오사카의 일본제일은행권 화폐로 교환(1905년 화폐개혁)하면서 보여준 꼼수를 베델이 폭로하자 메가타는 길길이 날뛰었다. 일본인들이 소위 “군사적 목적으로” 한국 농부들의 토지를 가로채려던 속임수(1904년 황무지 개간권 요구)도 밝혀내자 하세가와 역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있는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묘지. 서울신문 DB

▲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있는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묘지. 서울신문 DB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겉으로는 “대한제국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조선인들을 착취하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 유교문화 특유의 간접적 방식으로 느리지만 치밀하게 한반도를 잠식해 나갔다. 베델은 이런 처지의 조선인들을 지켜주려고 나선 유일한 인물이자 조선 황제를 대신해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한 단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의 온갖 술수를 하나하나 까발리며 조선인들에게 독립과 자유를 위해 저항하라고 외쳤다.

물론 그도 가끔 사고를 내 문제를 일으켰다. 조선의 암울한 현실에 지나치게 몰입해 보기 불편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지금 서울 어딘가에 있을 이 친구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쓰여져 있을 것 같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과 의지 만으로 조선인을 위해 싸웠다”라고...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2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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