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

입력 : ㅣ 수정 : 2018-09-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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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발굴 조선 첩보소설 ‘황제 납치 프로젝트’ 1회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최근에야 국내외에 알려진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학계에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1회>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서울신문 DB

▲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서울신문 DB

내가 조선의 옛 황제(고종) 퇴위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은 아니다. 그토록 온 세상이 원하던 소리(조선 독립)를 듣지 못하고 영혼의 자유를 얻기도 전에 죽었으니까. 스티븐슨(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은 더더욱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이 쏜 총에 맞아 저 세상으로 갔으니까. 그때 일본은 스티븐슨 사건을 빌미로 한국인 몇 명을 보복 살해하는 잔인함을 보였어.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소녀와 나 단 둘 뿐이다. 지난 겨울 나는 상하이 애스터하우스 호텔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나는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게 영화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몸서리치듯 괴롭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빌리, 이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야. 못하겠어.”

나는 지금(1912년 12월) 뉴욕 브루클린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급 아파트에서 편안히 지낸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권태롭기는 하다. ‘복도에 있는 저 ‘자메이카 머큐리’(사람 모양의 동물상으로 추정)는 하세가와(하세가와 요시미치 1850~1924)의 부하(하기와라 슈이치 1868-1911)를 닮은 것 같기도 한데’...왜 나는 지금 뉴욕에 살면서도 이런 생각만 하고 있을까. 왜 나는 동북아 외교 정글에 갇혀 있던 기이한 황제 고종과 관련해 목숨을 잃은 3명(번역자주:민영환, 베델,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를 신문에 내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창문 밖을 내다보니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한 미친 여자가 자기 사진을 보며 3시간째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허름한 옷 차림을 한 남자는 술에 취해 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고...이윽고 머릿 속 커튼이 열리며 오래된 기억이 날 서울의 먼지 쌓인 그곳으로 데려다준다. 테러와 위험으로 가득했던 그 때(1905년 10월)의 모험을 다시 한번 감행하고 싶어졌다. 지금 나는 브루클린에 사는 평범한 시민이지만 한때는 ‘골든엄브렐라’(소설 속 조선왕실의 세관조직)의 책임자였고 그녀는 조선 황제의 납치범이었다.
소설 속 배경인 중국 상하이 애스터하우스 호텔. 위키피디아 제공

▲ 소설 속 배경인 중국 상하이 애스터하우스 호텔. 위키피디아 제공

우선 여러분에게 베델이 누구인지부터 전하고 싶다. 그는 말이 많고 황소고집을 가진 키작은 영국인이었다.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러일전쟁이 끝난 ‘슬픔의 땅’ 조선을 점령한 일본인들의 머리에 구멍을 내려는 것 하나뿐인 듯 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나가사키 아니면 고베였던 것 같은데...베델은 자신이 발간하는 4페이지짜리 코리아데일리뉴스(KDN·1904~1909)가 있는 ‘그림자의 도시’ 서울에 살았다. 그는 러시아의 패배에도 아랑곳없이 조선인 조판공들이 만든 활자로 신문을 발행해 일본의 만행을 극렬히 비난했다.

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의 심복 하기와라는 “베델이 러시아로부터 비자금을 받아 신문을 만든다”라는 소문을 흘리곤 했다. 하지만 나는 베델이 진심으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위해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또 자신의 펜으로 거대한 일본의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겠다고 공언하는 치기도 알기에 그런 루머를 믿진 않았다. 그저 나는 이 작고 날카로운 영국남자가 어떻게 하세가와와 메가타(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 그리고 조선 황제의 일본인 고문들을 화나게 만들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일제가 대한제국 백동화를 오사카의 일본제일은행권 화폐로 교환(1905년 화폐개혁)하면서 보여준 꼼수를 그가 폭로하자 탁지부 고문 메가타는 길길이 날뛰었다. 일본인들이 소위 “군사적 목적으로” 한국 농부들의 토지를 가로채려던 속임수(1904년 황무지 개간권 요구)도 그가 밝혀내자 하세가와 역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있는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묘지. 서울신문 DB

▲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있는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묘지. 서울신문 DB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조선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들을 괴롭히고 착취했다. 그리고는 유교국가 특유의 간접적 방식으로 조금씩 조선을 흡수하려고 애썼다. 베델은 이런 조선인을 위한 유일한 영웅이자 조선 황제를 위해 일본에 맞선 단 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일본의 온갖 술수를 파헤치고 조선인들에게 저항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물론 그도 가끔씩 잘못을 해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조선의 암울한 현실 때문에 울분에 젖어 있어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 서울에 있을 이 친구의 무덤 묘비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을 것 같다. “오로지 자신의 힘과 의지 만으로 조선인을 위해 싸웠다”고.

2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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