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정물/도상봉 · 수박/허수경

입력 : ㅣ 수정 : 2018-08-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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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도상봉 24x34㎝, 캔버스에 유채 전 숙명여대 교수. 1964년 예술원상 수상.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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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물/도상봉
24x34㎝, 캔버스에 유채
전 숙명여대 교수. 1964년 예술원상 수상.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정물/도상봉

24x34㎝, 캔버스에 유채

전 숙명여대 교수. 1964년 예술원상 수상.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수박/허수경

아직도 둥근 것을 보면 아파요

둥근 적이 없었던 청춘이 문득 돌아오다 길 잃은 것처럼

그러나 아휴 둥글기도 해라

저 푸른 지구만 한 땅의 열매

저물어 가는 저녁이었어요

수박 한 통 사들고 돌아오는

그대도 내 눈동자,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었지요

태양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당신은 영원한 사랑

태양의 산만 한 친구 구름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당신은 나의 울적한 사랑

태양의 우울한 그림자 비에게 말을 걸었어요

당신은 나의 혼자 떠난 피리 같은 사랑

땅을 안았지요

둥근 바람의 어깨가 가만히 왔지요

나, 수박 속에 든

저 수많은 별들을 모르던 시절

나는 당신의 그림자만이 좋았어요

저 푸른 시절의 손바닥이 저렇게 붉어서

검은 눈물 같은 사랑을 안고 있는 줄 알게 되어

이제는 당신의 저만치 가 있는 마음도 좋아요

내가 어떻게 보았을까요, 기적처럼 이제 곧

푸르게 차오르는 냇물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재와 붕장어의 시간이 온다는 걸

선잠과 어린 새벽의 손이 포플러처럼 흔들리는 시간이 온다는 걸

날아가는 어린 새가 수박빛 향기를 물고 가는 시간이 온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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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박을 좋아한다. 말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느티나무 아래 앉아 수박을 먹고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다. 오늘 수박을 먹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직도 둥근 것을 보면 아파요. 오랫동안 둥근 것은 착한 것이라 생각했다. 평화 또한 둥글게 모여 손잡고 추는 춤이라 여겼다. 그런데 둥근 것은 마음이 아프다니. 언어의 지평과 시인의 감정이 만나는 접점에서 하늘을 본다. 한때 둥글었으나 한없이 쓸쓸했던 시간들 우리 모두에게 있다. 붉은 수박 속에 하늘의 별들이 가득 차 있다는 걸 생각하자. 밀화부리가 달팽이관에 수박 향기를 쏟으며 날아간다. 아픈 시인이여 아프지 말자.

곽재구 시인
2018-08-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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