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속 이야기 1 ‘부지런하고 아름다운 거미’

입력 : ㅣ 수정 : 2018-08-2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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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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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히 새벽이 오면 우렁찬 장닭이 아침을 깨운다. 졸음을 눈꺼풀에 달고 나선 적막한 마당. 울타리 너머 마을에는 벌써 하루를 시작하여 부산하다. 마당에 나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페츄니아. 밤을 지새며 피고 지어 화분에 넘치고, 몸살 앓던 반송은 해를 넘기며 새순 가득 올리고 있다. 요즘 꽃을 제일 많이 올리는 채송화 아직 졸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입을 꼭 닫고 있다. 마른 꼬투리 만들어내는 동부. 대추나무가 바람에 사삭거리고, 밤송이가 때 이르게 투둑 떨어진다. 참 지독한 여름이었다. 그 더위에 이슬 머무는 시간이 줄어든 탓일까 아침이면 만나던 거미줄이 보이지 않으니 무심코 걷다 머리카락에 휘감기고 얼굴에 붙어버린다.

‘이누무 거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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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으로 가는 길 멀지도 않은데 만나는 거미만 해도 여럿이다. 거미줄 만들어 길목을 막는 건 주로 왕거미들. 나무와 나무 사이, 가지와 가지 사이, 벽과 기둥 사이, 지줏대와 넝쿨 사이 등등 공간만 있으면 멋진 그물들을 만들어 낸다. 그 중 산왕거미가 만든 거미줄은 크기와 규모면에서 가장 크고 놀랍다. 높은 밤나무 가지에서 부터 고추밭 지줏대까지 길게 줄을 내어 거미줄 쳤는데 건들면 쨍 소리 날 듯 팽팽하고 짱짱했다. 방패연 인 양 커다란 장막을 친 그물이 아침 햇살을 만나 반사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는데 작년에 만난 풍경이다. 올해는 더위 탓이었을까 그렇게 큰 거미줄은 보이지 않았다.

제일 흔하게 만나는 건 고추밭 사이사이 그물을 만들어 날아오는 날벌레들 잡아내는 호랑거미와 무당거미들이다. 그들은 작은 공간을 점거하고 먹잇감 사냥을 하는데 모기 파리 뿐만 아니라 때론 메뚜기를, 날개 떨어진 나비도, 길 잃은 말벌도 거미줄로 칭칭 감아놓는다. 요즘 제일 흔한 것이 매미인데 걸린 건 본 적이 없다. 너무 시끄러워 그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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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 사이사이 구석에는 얼기설기 먼지그물처럼 불규칙적인 공간을 만드는 풀거미, 유령거미들도 보인다. 작은 거미들이라 유심히 보지 않으면 슬쩍 사라지고 만다. 거미줄을 이용하지 않는 거미도 많은데 잡초를 메다 보면 달아나기 바쁜 늑대거미들. 예쁜 꽃 속에 숨어있다가 다가오는 벌레들 잡아먹는 꽃거미들도 만난다. 괴기하기도 하고 때론 화려한 그들을 발견하는 것, 텃밭과 화단을 돌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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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귀곡산장이라 한다. 끈끈한 거미줄에 걸리면 즐거울 리 없으니 빗자루로 걷어내야 하건만 그냥 냅두니 듣는 핀잔이다. 작정하고 걷어냈던 닭장 앞에는 더 이상 거미가 줄을 늘이지 않는데 그냥 두니 그렇다. 도시에 살았다면 서둘러 치우고 그랬겠지만 온갖 벌레가 숨어 암약하는 시골에서 그들을 잡아먹는 거미는 더 이상 흉칙한 곤충이 아니다.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잠자리며 나비 나방에 쥐와 뱀 새들까지 잡아오지만 거미는 잡아오는 것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어쩌면 시시할 수도 있겠고 만만치 않을 수도 있겠고 도망을 잘 치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여전 실을 잣고 있을 그들. 언제 끊어지고 망가질지 몰라도 끊임없이 운명의 그물을 짜며 이어가고 이어나가는 그 공덕이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그들이 이 마당의 예술가인 이유다.

글·그림·사진: 신가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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