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시원한 풍차 소리를 들으며/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입력 : ㅣ 수정 : 2018-08-1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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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좋아하는 나라가 있다. 나는 네덜란드를 으뜸으로 친다. 그곳에 가면 수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큰 풍차 바퀴들이 아우성을 치며 잘도 돌아간다. 강가에 늘어선 풍차의 행렬을 바라보노라면 네덜란드를 향한 나의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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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벌써 여러 번 그곳을 찾아갔다. 유럽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 402명). 땅도 좁고 자연조건도 순조롭지 않다. 네덜란드라는 이름이 말하듯 워낙 “저지”라서, 본래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암스테르담도, 스키폴 공항도 실은 해수면 아래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댐을 쌓고 풍차를 돌려 바닷물을 뺐다. 무려 국토 4분의1을 바다에서 건져낸 것이다.

유럽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속담이 있다. “신은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그 나라 사람들이 창조했다.” 쓸모없는 땅덩어리처럼 보여, 서양 중세의 가장 탐욕스런 성직자며 귀족들조차 이 나라를 외면했다. 덕분에 네덜란드는 용감한 평민의 나라가 됐다. 억센 평민들이 운하를 건설하고, 질척한 갯벌에 수백만 개의 나무기둥을 박아 도시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들의 이마에서 흐른 구슬땀이 한 뼘 한 뼘의 땅덩어리가 됐다. 네덜란드는 어떠한 악조건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 인간 의지의 상징이요, 평민의 위대함이 아닌가.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시대였다. 그때 그들은 험한 파도를 이기고 동남아시아에 이르렀다. 유럽의 부자와 귀족들을 매혹시킨 향신료 무역의 최강자가 그들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일본과도 수백 년 동안 교역했다. 1858년 일본이 미국과의 통상을 결정한 배경에는 네덜란드 정부의 진지한 충고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네덜란드 덕을 톡톡히 본 셈이지만, 우리는 그들과의 인연이 너무 엷었다.

현대 서구의 경제학자들은 네덜란드야말로 자본주의의 원산지라고 주장한다. 17세기 거기에서는 보험업, 운송업은 물론 증권시장도 고속으로 성장했다. 1637년에는 ‘튤립 파동’이란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튤립 알뿌리 한 개가 요즘 화폐로 환산해 1억 5000만원도 넘었다. 엄청난 투기의 거품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적잖은 수의 상인과 시민이 파산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 네덜란드를 좋아하는 진정한 이유는 그깟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다. 자유와 관용 때문이다. 이 두 가지야말로 네덜란드의 매력이다. 서양 중세를 지배한 교회의 권위를 그 뿌리에서부터 뒤흔든 이는 철학자 스피노자였다. 그로 말하면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베리아반도를 떠나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유대인 공동체 출신이었다. 그 무리에서도 이단자로 치부되던 스피노자는 고난에 가득한 실천적 삶을 통해 관용과 자유의 가치를 역사에 아로새겼다.

내가 좋아하는 나라, 네덜란드는 지금도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이고 자유로운 곳이다. 동성 간의 결혼도 가장 먼저 허용한 나라, 카페에서는 마리화나도 거리낌 없이 사서 피울 수 있는 곳, 연명치료의 허울에서 벗어나 안락사를 인간의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는 곳이 바로 네덜란드이다.

여전히 네덜란드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그곳 사람들은 영어도, 불어도, 독일어도 잘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좁은 자기네 땅 안에서 복작거리며 심하게 다투지 않는다.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쑥쑥 뻗어 가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나로서는 부럽기 그지없다. 독일처럼 명품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 삼성과 현대처럼 거대한 재벌기업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 그래도 네덜란드인의 평균소득은 유럽의 최강국인 독일을 크게 앞선다. 2018년 현재 네덜란드 평균소득은 5만 5185유로로 독일 5만 841유로를 넘었다.

네덜란드를 생각하면 나는 항상 기분이 밝아진다. 불가능 따위는 결코 그곳에 없다.
2018-08-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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