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안희정 판결, 사법부는 한발 더 나아갈 수 없었는가/김지예 사회부 기자

입력 : ㅣ 수정 : 2018-08-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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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2018.8.14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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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2018.8.14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피고인 무죄.”

“이런 쓰레기들.”

지난 14일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던 서울서부지법 303호 형사법정에 울려 퍼진 목소리들이다. 엘리트 판사로 알려진 조병구 부장판사는 판결에 논리적 흠결이 없었음을 강조하듯 차분하게 선고문을 읽어 내려갔지만, 여성 방청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법조인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대체로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위력에 의한 간음 입증이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와 증인들의 진술이 엇갈렸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사건이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로 현행법 체계의 미비를 꼽았다. 유죄를 선고하고 싶어도 현행법에서는 처벌할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 판사가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 민스 노 룰’은 상대방이 부동의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관계를 한 경우 이를 강간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 기준으로 강간 여부를 가린다. 여기에서 더 나아간 ‘예스 민스 예스 룰’은 상대방이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모든 성관계를 강간으로 처벌한다. 최근 ‘미투 운동’ 영향을 받아 스웨덴이 이를 입법화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꼭 공을 입법부로 넘겨야만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전날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 선고와 비교하면 더 그렇다.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주를 이뤘던 기존 몰카 판결과 달리 법원은 이 사건의 피고인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몰카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처벌도 엄중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피고인이 여성이라서 중형이 내려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긴 했지만, 향후 몰카 재판의 시금석이 될 판결이라는 평가가 더 타당해 보였다.

14일 저녁 서부지법 앞에서 열린 긴급집회에 참여한 여성들은 “재판부가 적극적인 판결로 현실을 극복하기보다는 소극적인 판결로 현실 뒤에 숨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여성들의 분노가 법전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다.

jiye@seoul.co.kr
2018-08-1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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