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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전유물’로 변색… 광복절에도 태극기 꺼리는 시민들

보수 ‘전유물’로 변색… 광복절에도 태극기 꺼리는 시민들

이하영 기자
입력 2018-08-15 22:30
업데이트 2018-08-1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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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집회 광화문 등 서울 도심 점령
朴탄핵 후 태극기 부대 ‘상징’ 돼버려
시민들 “오해받을라” 국기 게양 기피
‘수요시위’ 땐 배부했다 10분 만에 회수
제73주년 광복절인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제73주년 광복절인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국경일을 기념하며 집집마다 내걸던 태극기의 상징성이 최근 급격히 변색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상징이 돼 버린 까닭이다. 현관이나 창문에 태극기를 내걸면 ‘태극기 부대’로 오해받을까 봐 아예 국기 게양을 꺼리는 일반인도 속출하고 있다.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며 서울 광화문 등 도심으로 나온 시민들 상당수는 태극기를 부끄럽게 여겼다. 이날 태극기가 ‘문재인 대통령 탄핵 집회’ 참가자임을 식별하는 ‘표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제1348차 수요시위’에서는 참가자들에게 태극기가 배부됐다가 10분 만에 황급히 회수되는 일이 벌어졌다. 태극기를 배부한 임진옥(41·여)씨는 “광복절을 기념하는 의미와 할머니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태극기를 준비했는데 다들 반기는 표정이 아니었고 ‘태극기 집회’를 열려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것 같아 급히 회수했다”고 말했다. ‘한일합의 무효 요구 대학생 평화선언집회’ 참가자들도 태극기를 들지 않았다. 이태희(21·여) 평화나비네트워크 회원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애국심을 표출하는 건 맞지만, 방식이 너무 과격하다”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보수단체의 상징처럼 돼 버린 태극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반면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날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서울광장, 덕수궁 대한문 앞, 서울역광장 등을 모조리 점령했다. 이들이 흔드는 태극기는 광복절을 기념하는 태극기가 아니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정모(65)씨는 “태극기는 당당한 우리나라의 상징 아니냐. 우리는 순수하게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나왔다”면서 ‘박근혜 석방’과 ‘문재인 탄핵’을 목놓아 외쳤다. 박모(65)씨도 “무능력한 정부가 복지를 남발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정부를 갈아엎어야 한다”며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날 서울의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에서 태극기를 게양한 가정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용산구에 사는 이정엽(71)씨는 “태극기를 내걸었다가 내가 ‘태극기 부대원’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이 날 것 같아 포기했다”면서 “태극기 부대가 대한민국의 국기를 오염시켰다”고 말했다. 강남구 주민 김모(27·여)씨도 “자랑스러운 국기는 옛말이 됐다. 태극기 걸기가 부끄러워졌다”면서 “이제 거리에서 태극기만 봐도 태극기 집회만 떠올라 피하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2018-08-1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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