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광장 점령한 ‘태극기 부대’…이들의 막말과 무질서에 씁쓸한 시민들

입력 : ㅣ 수정 : 2018-08-1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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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회 광복절인 15일 서울 도심 광장 곳곳이 태극기로 뒤덮였다. 하지만 광복절을 기념하는 태극기의 물결은 아니었다. ‘박근혜 석방’과 ‘문재인 탄핵’을 외치는 ‘태극기 부대’의 태극기였다. 휴일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은 광장을 꽉 채운 보수 단체 회원들의 막말과 무질서에 큰 불편을 겪었다.
광복절에 열린 태극기 집회 광복절인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보수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고 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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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에 열린 태극기 집회
광복절인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보수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고 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 서울역광장, 덕수궁 대한문 앞은 보수 단체 회원들에게 점령당했다. 이들의 집회에는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때와 비슷한 규모의 인원이 모였다. 태극기행동국민운동본부·한국기독교총연합회·비상국민회의·자유한국연합 등 단체는 종로구와 중구 일대에서 각각 집회를 개최한 뒤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집회 전 규모를 2만 50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했으나, 실제로 모인 숫자는 이를 훨씬 뛰어넘었다. 이날 광화문광장 일대와 대한문 앞, 서울역광장에 투입된 경찰 인력만도 90개 중대, 약 6750명에 달했다.
제73주년 광복절인 1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보수 성향의 시민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휴대하고 집회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태극기가 보수 집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순수하게 광복절을 기념하는 태극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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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3주년 광복절인 1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보수 성향의 시민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휴대하고 집회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태극기가 보수 집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순수하게 광복절을 기념하는 태극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보수 집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 마이크를 잡은 연사들은 “문재인 빨갱이를 빨갱이라고 하지 노랑이라고 하냐”, “노란 리본을 찢어버리자”, “빨갱이들의 발광을 진압하는 자들이 바로 여러분이다”, “간첩 놈들”이라고 하는 등 각종 힐난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또 울려 퍼지는 외침에 시민들은 귀가 찢어질 정도의 고통을 받았다. 여러 집회의 마이크 음성이 뒤섞여 귀에다 대고 말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흡연이 금지된 인도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참가자들이 있는가 하면,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음식을 먹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날 노점상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팔고 있었다. 태극기가 보수 집회의 상징물이 된 까닭에 그들이 선호하는 ‘성조기’도 불티나게 팔리는 모습이었다. 상인들은 국기 1개당 1000원씩 받고 팔았다. 한 상인은 “광복절이지만 태극기 못지않게 성조기도 잘 팔린다”면서 “애초에 보수 사람들만 사러 오니 우리도 장사하려고 태극기와 성조기 묶어 파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태극기와 성조기 함께 파는 상인 제73주년 광복절인 15일 길거리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태극기가 보수 집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순수하게 광복절을 기념하는 태극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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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와 성조기 함께 파는 상인
제73주년 광복절인 15일 길거리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태극기가 보수 집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순수하게 광복절을 기념하는 태극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이날 도심 곳곳에서 보수 집회가 열리면서 광화문과 종로 일대로 나온 시민들은 극심한 차량 정체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오후 4시 30분쯤 세종대로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되자 일반 시민의 통행마저 차단됐다. 일부 행인들은 행진 대열을 가까스로 뚫고 길을 건넜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는 발만 동동 구르며 행진 대열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광복절을 기념해 산림청과 서울시가 주최한 ‘나라꽃 무궁화 전국축제’로 광화문광장에는 무궁화가 흐드러졌지만, 이 축제에 참가하려던 시민들이 일찍이 발길을 돌려 행사장은 한적했다. 광장 양옆에서 열리는 보수 집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친 말들이 축제에 훼방을 놓은 듯했다.

자녀 둘과 함께 광화문에서 휴일을 보내려던 김은규(39)·이선영(39) 부부는 집회 참가자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인상을 찌푸렸다. 김씨는 “이 정도 집회가 있을 줄 알았으면 광화문에 놀러 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과격한 정치적 발언으로 광복절이 지닌 뜻깊은 의미가 왜곡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씨도 “참가자들이 질서없이 몰려다니고 길거리에서 흡연도 많이 해서 아이들과 함께 다니기가 너무 불편하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광복절에 열린 태극기 집회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집회에서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가 지나가자 지지자들이 인도에 서서 환호를 보내고 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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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에 열린 태극기 집회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집회에서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가 지나가자 지지자들이 인도에 서서 환호를 보내고 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행진 대열을 힘겹게 뚫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대학생 박은영(21·여)씨도 “정말 혼란스럽고 난잡한 현장”이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인도로 통행하기도 어렵고 차도에서는 행진도 하고 있어서 다니기 어렵다”면서 “앞뒤로 흔드는 태극기에 맞을 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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