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질문/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입력 : ㅣ 수정 : 2018-07-2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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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연주는 매우 간단합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건반을 누르는 일뿐입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했던 말이다. 이토록 간단하게 피아노 연주의 경지를 표현할 수 있는가.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건반을 누르기 위해 피아니스트들은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제아무리 좋은 해석과 아름다운 표현의 시도여도 부적절한 순간에, 혹은 부적절한 건반을 눌러 버리면 그 결과는 몹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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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연해서 더더욱 어렵다. 우리 삶에 대입해 돌아보라. 적시에 적절한 행동이나 말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만약에 그것이 쉬웠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소통하고, 보다 효과적이고 순탄한 사회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인해 우리의 역사도 다르게 쓰였을 것이다.

바흐가 살던 시대에는 현재의 피아노가 아닌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쳄발로라는 악기가 주로 연주됐다. 쳄발로는 피아노와 달리 셈여림의 표현이 불가능한 악기다. 타자기 자판을 누르면 글자가 찍혀지듯 건반을 누르면 그 건반에 연결된 음이 소리 날 뿐이다(건반악기의 영어 표현은 말 그대로 Keyboard Instrument이다). 음색, 음질, 음량의 변화를 표현해 낼 수 없는 이 악기를 바흐는 대단히 아쉬워했고, 한 단계 발전한 악기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했다.

바흐는 신과 음악 앞에서만은 더없이 겸손하고 헌신적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연주에 대해선 혹평을 참지 않았고, 대부분의 조율사에게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을 일삼았다고 한다. 피아노의 구약성경이라 불리는 ‘평균율 곡집’은 원어로 ‘다스 볼템페리르테 클라비어’(Das Wohltemperierte Klavier)인데, 이를 직역하면 단지 ‘잘 조율된 피아노’다. 서양음악의 근간을 이루게 된 이 역사적인 작품을 바흐가 창조해 낸 데에는 현재에 안주하고 타협하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비전을 제시하는 바흐의 삶의 자세와 철학이 묻어나 있다. 바흐는 불쌍하게도 쳄발로가 저물고 피아노가 대세로 떠오르는 시기가 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그가 꿈에 그리던 소리를 지금 그를 대신해 현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며 그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악기 연주는 매우 간단합니다.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건반을 누르는 일뿐입니다.” 이제 바흐의 말이 다른 관점에서 이해되기 시작한다. 많은 속담이나 명언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그 의미가 완전히 변하는 경우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의 유래가 인분을 선물하겠다는 선조들의 우애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하듯이 말이다. 바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의 워딩을 예술의 경지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실제 많은 연주자들이 그 명제에 갇힌 채로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고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을지에 혈안이 돼 있다. 그것은 마치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꼴이나 다름없다.

바흐는 결국 ‘언제’,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5W1H(육하원칙) 중 ‘How’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고 다른 5개의 W와 차별되게 쓰인다.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대답이 없다. 어떠한 대답이 나오더라도 틀렸다 할 수 없고, 여러 가지로 다르게 나와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 바로 ‘어떻게’이다. 뒤집어 보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질문이 바로 ‘어떻게’라는 말도 된다. ‘어떻게’라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우리의 세상살이가 천태만상의 드라마 한 편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이 설령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살 맛은 더 난다.
2018-07-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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