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키운 ‘빈부격차’...밖으로 뛰쳐나온 쪽방촌 주민들

입력 : ㅣ 수정 : 2018-07-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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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만...“목욕탕 만들어줬으면”
그늘에 따라 그들도 움직였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쪽방촌 주민들이 그늘의 경계에 맞춰 의자를 움직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그늘에 따라 그들도 움직였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쪽방촌 주민들이 그늘의 경계에 맞춰 의자를 움직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등이 뜨거워 방에 누워 있을 수가 없잖아.”

20일 낮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의 쪽방촌에 사는 주민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뛰쳐 나왔다. 땡볕에서 농사 일을 하다 온 것처럼 땀이 범벅이 된 오모(69)씨는 대뜸 “마을에 목욕탕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욕탕이 들어섰으면 하는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 오르면서 방 안이 후끈후끈 달아오르자 머릿 속을 맴돌던 ‘본능적인’ 요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이렇듯 폭염은 가난한 이들에게 잔인했다. 더위를 이겨내는 것도 ‘빈익빈 부익부’ 법칙이 적용되는 것일까. 열기는 어느새 건물 사이 좁은 골목 틈새까지 스며들면서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그늘의 크기만큼 쉼터를 갖는 쪽방 사람들

이날 오후 쪽방촌의 그늘은 시시각각 변했다. 주민들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조금씩 움직였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나무 그늘은 이들의 유일한 쉼터였다. 늦잠을 자 뒤늦게 일어난 사람들도 밖으로 나서면 자연스레 이곳으로 모였다. 15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쪽방촌 건물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늘로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 일부는 윗옷을 벗어 던졌다.
옷 입는 것도 덥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20일 남대문로5가 쪽방촌 주민들이 윗옷을 벗고 건물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옷 입는 것도 덥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20일 남대문로5가 쪽방촌 주민들이 윗옷을 벗고 건물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가파른 쪽방촌 뒤쪽은 높은 벽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주민들은 낮 동안이라도 최대한 답답하지 않은 풍경을 담아두려는 듯 보였다. 그늘의 경계선에 자리한 사람들은 그늘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의자의 위치를 바꿨다. 쪽방촌에 찾아온 햇볕은 달갑지 않은 손님같았다. 주민들은 연신 “어유, 덥다”는 말만 내뱉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존해 더위를 식히며 낮잠을 청했다.

술 한 잔에 무더위를 잊어보지만...

쪽방촌에 거주하는 이모(56)씨가 기자에게 자신의 방을 공개했다. 이씨의 한 평짜리 반지하 쪽방에 들어서자 낡은 선풍기와 작은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벽에 걸어 놓은 두꺼운 점퍼는 좁은 방을 더 답답하게 했다. 작게 난 창문 밖으로는 바로 옆 건물의 회색 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선풍기에서는 이내 더운 바람이 나왔다.
바람 안 통하는 쪽방촌 반지하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 사는 이모씨가 방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반지하인 이씨의 쪽방에는 조그만 창문이 있지만 옆 건물 벽에 가로막혀 바람이 통하지 않았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바람 안 통하는 쪽방촌 반지하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 사는 이모씨가 방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반지하인 이씨의 쪽방에는 조그만 창문이 있지만 옆 건물 벽에 가로막혀 바람이 통하지 않았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이씨는 “더워서 어찌 지내느냐”고 묻는 기자를 향해 “날이 더우니 자꾸 밖에 나간다. 밖이 그나마 더 시원하다”고 말했다. 쪽방촌 센터에서 일주일에 물을 10병씩 나눠주는데 이씨는 하루에 5병씩 마신다고 했다.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로 약을 복용하면서다. 이씨는 “약을 먹다 보니 독을 빼려고 많이 마신다”고 말했다. 부족한 물은 이웃 쪽방촌 사람들이 나눠준다고 했다.

선풍기만 없었다면 순간 계절을 착각할 정도로 방 안에는 이씨의 사계절 생필품이 모두 자리 잡고 있었다.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두꺼운 이불이 깔려 있는 이유를 묻자 이씨는 “몸이 아파서 푹신한 데 누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술 한 잔 먹고 자야겠다”며 술병을 찾았다. 이들에게 술은 한여름 쪽방촌에서 숨 막히는 무더위를 잊게 하는 수단이었다.

이씨의 방을 나서 쪽방촌 입구에 위치한 남대문 쪽방 상담소로 향했다. 600명가량 되는 쪽방촌 주민들을 관리하는 상담소 직원은 고작 5명뿐이었다. 직원들은 직접 동네 곳곳의 주민들을 상대하느라 하루에도 수십 번 상담소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린다고 했다. 이 곳에서 만난 정민수 사무국장은 “어르신들이 혼자 지내다 보니 외로움을 많이 호소한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사생활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더위를 이겨낼 마땅한 방법도 없는 서울의 한 쪽방촌은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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