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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침수에도 부상 ‘0’…히로시마 마을의 기적

토사·침수에도 부상 ‘0’…히로시마 마을의 기적

김태균 기자
입력 2018-07-18 22:38
업데이트 2018-07-1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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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아침 일본 히로시마현에 사는 90세 할머니는 억수 같은 빗소리를 들으며 어릴 적 전쟁 때의 폭격기 공습을 떠올렸다. 무서웠다. 옆에는 다리가 불편한 83세 남편이 있었다. 할머니는 오전 8시 이웃에 사는 오노 아키요시(75)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가 무섭게 오니 우리를 피난소로 데려다 달라.” 오노는 비상시 부부를 도와줄 대피 책임자로 미리 지정돼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차에 태워 4㎞ 떨어진 주민 보건복지센터로 옮겼다. 부부의 집에는 이튿날 새벽 거대한 토사와 암석이 들이닥쳤다.

●대피 책임자 정해 고령자 피난소로 옮겨

기록적인 폭우가 히로시마, 오카야마, 교토 등 서(西)일본을 강타한 지 10여일. 18일 현재 사망 216명·실종 15명의 인명피해(NHK 집계 기준)가 발생한 가운데 잘 훈련된 대응으로 단 1명의 사망·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은 작은 마을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 구로세초 요코쿠 단지의 성공적인 재난 대피 사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히로시마현은 이번 폭우로 114명(사망 106명·실종 8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히가시히로시마시는 그중에서도 특히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요코쿠 단지도 주택 49가구 중 10채가 완파되고 10채가 토사와 탁류에 휩쓸렸다. 그러나 희생자와 부상자는 단 1명도 없었다. 주민들 스스로 “평소의 자발적인 방재 활동 덕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年2회 대피 훈련… 주민들 자발적 방재 활동

대표적인 것이 90세 할머니 사례와 같이 자력으로 피난하기 어려운 고령자들을 위해 재난 대피 담당자들을 평소에 주민들 사이에서 미리 정해둔 것이었다.

3년 전부터는 연간 2차례씩 토사 재해를 상정한 집단연습을 해왔다. 매번 주민의 4분의1 정도가 참가한 가운데 관내 노인정으로 대피하는 훈련을 했다. 집에 위험이 닥쳤을 때 조금이라도 더 멀리 달아날 수 있도록 마을 공터의 풀을 베고 땅을 골라 대피로를 항상 깨끗한 상태로 유지했다. 주민들은 시청 담당자를 직접 불러 방재 강좌도 들었다.

대피 담당자로 활동하는 주민 야마모토 도시노리(71)는 “영어회화처럼 재난훈련도 꾸준히 반복하면 언젠가는 익숙해질 것이라고 믿었다”면서 “(토사가 닥친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우리 마을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2018-07-1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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