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세월 흔들림 없이… ‘나라다운 나라’ 뿌리가 된 언론

입력 : ㅣ 수정 : 2018-08-0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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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언론수호 나섰던 베델 선생
내년은 3·1운동 발발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우리가 굴곡의 세월을 견디며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 매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조국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항일 독립투쟁의 선봉에 114년 전 오늘 세상에 첫선을 보인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가 자리잡고 있다. 1904년부터 6년여간 한국인의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한 신보를 창간한 이가 바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외국인’으로 꼽는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이다.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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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한글전용 첫 호(1907년 5월 23일자)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은 1904년 7월 18일자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고, 1907년 5월 23일자부터 처음으로 한글 전용판을 추가로 발간했다.  서울신문 DB

▲ 한글전용 첫 호(1907년 5월 23일자)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은 1904년 7월 18일자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고, 1907년 5월 23일자부터 처음으로 한글 전용판을 추가로 발간했다.
서울신문 DB

最古 지면(제16호) 1904년 8월 4일자

▲ 最古 지면(제16호)
1904년 8월 4일자

지령 10000호 1977년 6월 21일자

▲ 지령 10000호
1977년 6월 21일자

대한매일 첫 호 1998년 11월 11일자

▲ 대한매일 첫 호
1998년 11월 11일자

서울신문 제1호 2004년 1월 1일자

▲ 서울신문 제1호
2004년 1월 1일자

서울신문은 ‘제2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언론 자유 수호에 나선 ‘대영(大英) 남자’ 베델의 흔적을 찾고자 영국 런던과 브리스톨, 일본 고베·요코하마, 중국 상하이로 ‘역사 추적’에 나섰다. 인터넷 등에 떠도는 그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이번 기회에 바로잡는다. 부풀리거나 왜곡되지 않은 진짜 베델의 모습을 정리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태어난 브리스톨 생가를 찾아내고 가족 관계를 새로 추가하는 등 학계에서도 풀지 못한 역사의 수수께기를 해결하는 성과를 냈다. 베델의 열정에 매료돼 자발적으로 그의 삶을 연구하는 외국인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서울신문은 12회에 걸쳐 이런 내용을 소개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2018-07-1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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