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적은 나 자신… 그래서 아프다

지금도 낭만적 사랑 서사, 그러니까 영혼의 반쪽을 운명적으로 만나 완벽한 하나가 돼 지극한 행복을 누린다는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진다. 시대와 장소와 캐릭터가 작품마다 달라지면 뭘 하나. 전달하는 주제가 변함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들은 한 작품이다.
이런저런 연애물을 섭렵하며, 다시 말해 여러 착오를 거듭하면서 내가 얻은 한 가지 교훈을 밝힌다. 뭔가 하면, 낭만적 사랑 서사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은 로맨스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 서사는 사람들을 예쁜 환상 속에 가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실제 연애는 파탄이 난다. 현실에서 영혼의 반쪽을 운명적으로 만나 완벽한 하나가 돼 지극한 행복을 누리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좋은 로맨스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허상이 아니라 삶을 직시하게 만든다. 거기에는 당연히 ‘커다란 고통’이 뒤따른다. 사랑은 아프다. ‘빅 식’(The big sick)은 그런 진실을 담아내는 영화다. 주인공은 미국 여자 에밀리(조 카잔)와 파키스탄 남자 쿠마일(쿠마일 난지아니) 커플이다. 현재 두 사람의 연애는 위태롭다. 그 원인은 우선 쿠마일 부모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키스탄인 며느리를 원하는 어머니 아버지는 아들에게 중매혼을 강요 중이다. 만약 이 뜻을 거스른다면 너를 가족에서 제명하리라. 과연 쿠마일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는 다음과 같이 하기로 마음먹는다.

① 에밀리와의 교제를 부모에게 숨긴다. ② 부모가 고른 맞선 상대들과 만나기는 하되, 그들과 관계를 이어가지는 않는다. ③ 이상의 모든 사실을 에밀리에게 감춘다.

위에서 현재 두 사람의 연애가 위태롭다고 썼다. 한데 그 원인이 쿠마일 부모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따지고 보면 문제의 진짜 원인은 쿠마일에게 있다. 그는 “1400년 된 파키스탄 문화와 싸우고 있다”고 본인의 행위를 변명한다. 하지만 쿠마일은 1400년 된 파키스탄 문화와 제대로 싸운 적이 없다. ①~③에서 드러나듯 그는 사태를 회피하고 거짓말만 늘어놓았다. 모두를 덜 아프게 하고 싶다는 결정이 실은 모두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결정이었던 셈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낭만적 사랑 서사의 적은 인물 외부에 있다. 그것을 없애거나 이겨내기는 쉽다. 적이 잘 보여서다. 반면 좋은 로맨스 작품의 적은 인물 내부에 있다. 그것을 없애거나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적이 잘 안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자기가 하는 사랑에 대한 적이 바로 자신이라서 그렇다. ‘빅 식’은 정의한다. 사랑의 성패는 스스로의 오류와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충실하게 기울이는 데 달려 있다고. 이전의 자기 자신과 결별하기. 이것은 분명 ‘커다란 고통’을 준다. 그러나 영혼의 반쪽·운명·완벽한 하나·지극한 행복이라는 말이 감추는 고통보다는 훨씬 나은 고통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아프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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