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경 기자의 사람, 사랑] 눈치 보지 않고 더위를 피할 권리

입력 : ㅣ 수정 : 2018-07-0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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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취재차 한 아파트 경비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경비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예순이 넘은 경비원은 30도가 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6.6㎡(2평) 남짓한 공간에서 작은 선풍기 두 대와 조그마한 창 하나에 의존한 채 고스란히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경비실의 한쪽에 소형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에게 에어컨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윤수경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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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수경 사회2부 기자

사정은 이랬다. 아파트 주민 중 일부가 경비실에서 에어컨을 켜는 것을 두고 불만을 제기해 눈치를 살펴 정말 더위를 못 참겠을 때만 에어컨을 켠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경비실은 한여름에 더위에 가장 취약한 곳 중 하나다. 얇은 콘크리트 지붕에 통풍도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경비원들이 느끼는 폭염은 불편의 수준이 아니라 고통이다.

최근 아파트 경비실에 주민들이 에어컨을 선물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마냥 훈훈하지만은 않다. 실제 에어컨을 편하게 켤 수 있는 경비원이 얼마나 될까. 경비실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공용전기료로 잡히다 보니 관리비 인상을 우려하는 주민의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이 경비실에 있는 에어컨 플러그를 뽑아 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심지어 경비원들이 에어컨을 트는 것을 두고 주민 간 마찰이 생기다 보니 이를 두고 주민투표까지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찬성표를 던졌다며 나름의 선행을 베풀었다고 자위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애초 주민의 취지는 투표를 통해 경비원이 주민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투표 자체가 폭력적이다. 의결 결과와 상관없이 가시화된 반대표는 경비원에게 고스란히 심리적 억압일 수밖에 없다. 자택 출입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전지가위를 던지는 일만이 폭력이 아니다. 악의 없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 경비실에서 에어컨을 쓰면 관리비가 오르는 걸까. 2평 남짓한 공간에 소형 에어컨을 하루 10~15시간 가동해도 전력 사용량은 100~135㎾h에 불과하다. 서울시 아파트 한 동에 평균 130여 가구가 산다면 가구별로 100원 정도씩만 내면 충당이 가능한 셈이다.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주민 아이디어로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했다. 경비실 외벽에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에어컨에 들어가는 전력을 자체 충당하도록 한 것이다. 소형 태양광 발전기는 1년에 200㎾h가량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여름내 경비원이 마음껏 에어컨을 틀 수 있다. 경비실 소형 태양광 설치 비용 61만 5000원 중 41만 5000원은 서울시, 10여만원은 성북구의 지원을 받았다.

점점 삶의 무게를 개인 혼자 지기 힘든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여느 때보다 공동체 복구가 필요하다. 남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연대, 박원순 서울시장이 10년 시정의 핵심이라고 꼽은 ‘사회적 우정’이 절실한 때다.
2018-07-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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