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민들레 영토/황수정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8-07-0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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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지인은 어딜 가나 구석 자리의 화분을 먼저 살핀다고 했다. 화분의 꽃이 조촐하고 이파리에 윤기가 도는 식당이라면 맛이 덜해도 다시 찾게 된다고. 주인장 말본새가 무뚝뚝해도 속정은 깊을 사람, 내놓는 밑반찬은 거칠어도 매사에 찰찰할 사람. 무턱대고 믿음이 간다면서.

어느 밥집 낮은 기와지붕 한켠에 잡풀이 오복했다. 도심에서는 꿈속같은 풍경이다. 기왓장 틈서리에 깨금발로 하얗게 뻗댄 것들은 개망초꽃. 주인이 게을러서 그냥 두고 본 게 아니다. 조붓한 마당가에는 달맞이꽃, 물망초를 다복다복 발 디딜 틈도 없이 가꿨다.

지붕을 가리켰더니 주인은 웃고 만다. 풀씨가 꽃이 되라고 기다려 준 그 마음이야말로 잘 차린 밥상이다.

우리 집에도 민들레 홀씨가 왔다. 베란다 화분에 멋대로 터를 잡았는데, 함부로 잡초라 부르지 못하겠다. “원래 내 자리”라고 따질지 모른다.

연못도 없는 아파트 뒤뜰에서 어쩌자고 개구리 ‘떼창’은 건너오는지. “고릿적부터 우리 영토”라고 여름밤 오기만 기다렸나. 발을 굴러 너는 울고, 미안해서 나는 웃고, 무진장 밤은 깊고.

sjh@seoul.co.kr
2018-07-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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