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두꺼비는 느릿느릿 걷는다/정종홍 작가

입력 : ㅣ 수정 : 2018-06-2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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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이슬 젖은 풀숲에 두꺼비 한 마리가 느릿느릿 걸었다. 눈꺼풀을 끔뻑끔뻑. “곧 장마지려나 보다.” 습한 곳에 사는 두꺼비는 장마를 마중 나온다고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자연의 섭리를 일러주셨다. 장마 전까지는 일을 마쳐야 한다. 엉겁결에 떠 맡은 풀베기 작업. 며칠째 들기만도 버거운 예초기를 짊어 메고 ‘낑낑’ 씨름이다. 새벽 선잠 깨면 밤새 누가 모질게 때린 듯 삭신이 쑤셨고 끼니때마다 젓가락 든 손이 벌벌 떨렸다.
정종홍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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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홍 작가

풀베기 작업에도 필수 안전장비를 갖춘다. 안전화를 신고 무릎과 정강이뼈를 감싸고 발등을 덮는 보호대를 차고 안면보호구를 쓴다. 손바닥에 오목한 쿠션이 붙은 진동 방지 장갑을 낀다. 연료는 휘발유에 엔진오일을 5:1 비율로 섞는다. 첫날은 나일론 줄로 평지에 붙은 이끼 찌꺼기 따위를 긁었다. 튀는 잔돌이 매섭게 몸을 때렸고 서툰 손은 바닥을 자꾸 쳤다. 밑을 때리면 줄이 풀리는 구조였기에 줄 한 통을 거의 다 소모했고 결국 엉켜 부품을 망쳐 버렸다. ‘내일은 이도날을 써야 한다.’ 밤새 두려움에 잠을 설쳤다.

깡! 첫 울림. 그 충격이 전한 전율은 컸다. 커다란 바위를 피하려다 풀숲에 숨은 낮은 고목을 때렸다. 굵고 딱딱한 나무는 쇠와 부딪친 소리를 냈다. ‘찌잉’ 번개 치듯 전해지는 충격에 머리가 쭈뼛 섰다. 공포였다. 최대한 낮게 지면 가까이 날을 붙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무서워 멀찍이 물러서 높게 날을 치면 하나 마나 한 헛수고다. 멀리서 보면 내가 깎은 자리는 단박에 티가 난다. ‘두 번 손 타게 하지 마라. 다시 깎는 게 더 어렵다.’ 더뎌도 꼼꼼히 온 신경을 곧추세워 공포에 다가서야 했다.

이도날은 양날검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날질은 왼 방향이 정석이다. 이도날은 날카롭고 빠르지만 위험하다. 요리사가 칼이 무서워 멈칫하거나 튀김 솥에 다가서지 못하면 베이거나 화상을 입듯 맞서지 않고 피하기만 하면 나아가지 못한다. 제자리걸음은 과감한 포기보다 조직에 더 큰 해를 끼친다. 모른다고 질문하는 용기가 섣부른 아는 체보다 더 안전한 결과를 낳는다.

사람이란 어찌나 얄팍한 존재인지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다 안다 자만한다. 점차 작업 속도에 욕심이 붙는다. 처음엔 바위 때리던 소리가 점차 친근해진다. ‘깡! 깡!’ 때리던 부딪침은 ‘따당, 따당’ 마찰로 접촉하고 ‘그르렁 그렁’ 긁어 주다 이젠 ‘웅웅’ 돌에 달라붙어 대화한다. 어느새 바위는 말끔한 자태를 드러낸다. 만족한 결과에 도취하면 팔에 힘이 빠져도 알아채지 못한다.

비탈진 경사를 딛고 풀을 베는 것은 두 배의 수고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돌이 많은 험지는 작업 속도를 늦추고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바짝 긴장해 집중하니 실수가 없어 풀 벤 자리도 곱다. 두렵지 않고 익숙하다 싶어 자만하면 헛손질을 한다. 뎅겅뎅겅 어린 나무를 잘라 버린다. 분명 저긴 벌레가 숨었고 두꺼비가 웅크렸다 싶어도 날을 멈추지 않고 쓱쓱 지나친다. 나의 자만에 귀한 생명이 꺾였다.

사람이 보기 좋은 경관을 위한 풀베기 작업이 끝날 무렵 우린 드러난 나무 벤치에 앉았다. 벌레와 두꺼비가 살던 풀숲 자리에 덩그러니 벤치가 있었다. 종아리와 팔뚝엔 튄 잔돌이 할퀸 자국이 새겼고 저린 통증이 배었다. 내가 깎은 자리에 고개 숙인 나리꽃 한 송이가 도도하게 피었다. 차마 베지 못해 남긴 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나리꽃이 껑충 솟았다. 나리꽃 붉음은 석양에 물들고 우리들 가슴에는 서늘한 바람이 닿는다. 벌레와 두꺼비는 느릿느릿 걷는다.
2018-06-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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