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흑요석 루트

입력 : ㅣ 수정 : 2018-06-2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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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돌을 두드려 깨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는 적어도 250만년 전부터 시작한다. 돌을 갈아서 석기를 만들기 시작한 신석기시대의 시작을 약 1만년 전이라고 볼 때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구석기 시대다. 구석기시대 인류의 진화와 석기 제작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아주 단순하고 짧게 설명한다면 “머리는 점점 커지고 석기는 점점 작아진다”고 할 수 있다. 머리가 커지는 것은 머리가 좋아지는 것, 석기가 작아지는 것은 휴대성과 편리성이 좋아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 석기 크기의 변화 과정은 마치 벽돌만 한 커다란 휴대전화가 손안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폰으로 작아지는 과정과 다름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면 생산품이 소형화되는 경향성을 이미 구석기시대의 석기들이 보여 주고 있다.

전기 구석기시대에는 주먹도끼나 찍개와 같이 크고 무겁고 투박한 석기들이 주를 이룬다. 약 4만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돌날이나 찌르개와 같이 작고 날렵한 석기들이 만들어졌고,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에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예술품 같은 정교한 석기들도 등장한다. 이렇듯 점점 작아지는 석기를 만들기 위해서 석기 제작 기술도 계속 발전했다.

초기의 석기 제작자들은 커다란 돌에 내리치거나 돌망치로 직접 돌을 두드려 깨는 직접타격법으로 뗀석기를 만들었다. 당연히 크고 투박한 석기가 만들어졌다. 석기를 더 작게 만들기 위해 등장한 제작 기술이 간접타격법이다. 돌망치로 돌을 직접 떼어내는 대신 사슴뿔로 만든 일종의 정(punch) 같은 걸 사용해서 기다랗고 얄팍한 석기, 즉 돌날을 떼어내는 기술이 간접타격법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말기에 이르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석기 제작 기술인 눌러떼기가 등장한다. 돌을 두드려서 깨는 것이 아니라 사슴뿔끝 같은 도구로 지그시 힘을 주어 눌러서 떼어내는 신기술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수백만 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몇 단계의 혁명적인 기술 발달 과정을 거치면서 눌러떼기 기술까지 개발한 구석기시대는 결국 돌을 갈아서 날을 만드는 또 다른 신기술로 다듬은 간석기가 등장하면서 마침내 신석기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한편 석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보다 다양한 종류의 석재를 사용하게 되는데 신기술과 신소재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등장한 신소재의 대표 주자가 바로 흑요석이다. 흑요석은 용암이 급속하게 굳어지면서 만들어지는 암석인데 유리와 비슷한 강도를 가지면서 가벼운 타격에 의해 예리하고 정밀한 날을 만들 수 있다. 흑요석 돌날은 현대 과학기술로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얇고도 날카롭다. 흑요석이라는 신소재를 눌러떼기라는 신기술로 가공하니 그야말로 획기적인 성능을 가진 새로운 석기가 등장한 것이다.

근데 한 가지 문제는 이 흑요석이 강가에 흩어진 차돌처럼 흔한 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흑요석 석기의 대부분은 백두산 흑요석으로 만들었다. 백두산이 어딘가? 서울에서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백두산에서 나온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라니…. 구석기시대 석기 장인이 흑요석을 구하러 먼 길을 떠나는 장면도 상상해 볼 수 있고, 흑요석을 여기저기 지고 다니면서 물물교환을 하던 구석기시대 보부상도 그려 볼 수 있다.

구석기시대 백두산에서 한반도의 중남부 지방까지 흑요석이 공급되던 그 길, 흑요석 루트를 직접 탐사해 볼 꿈같은 날이 조만간 올지도 모르겠다.
2018-06-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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