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열린세상] 몰래카메라가 관음증 도구로 악용되지 않으려면/이인희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몰래카메라가 관음증 도구로 악용되지 않으려면/이인희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8-06-05 17:42
업데이트 2018-06-05 17:5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인희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인희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국 사회가 몰래카메라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홍대 누드모델 사건을 정점으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신체 사진을 찍거나 유포하는 행위를 비롯해 공공장소에 불법 설치한 초소형 카메라들과 이를 찾아내는 탐지기의 숨바꼭질 뉴스는 이제 낯설지도 않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몰래카메라 범죄 발생 건수는 2011년 이래 7년 사이에 다른 범죄에 비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며, 가해자 대부분은 남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몰래카메라 범죄는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제14조에 의해 처벌된다. 법에서는 최저 3년부터 최고 7년까지 징역형을 명시하고 있으나 적발돼도 처벌 수위가 낮고 성별에 따라 편향적인 판결로 불만이 많다.

역사적으로 몰래카메라의 탄생에는 잘못이 없었다. 1880년쯤부터 미국, 영국, 독일, 호주에서 디텍티브 카메라(detective camera)라는 이름으로 몰래카메라는 최초로 등장했다. 직경 15센티미터 정도의 원반형에 단추 크기만 한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앞가슴에 매다는 목걸이 형태였다. 코닥이 필름카메라를 처음 발명한 1888년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일이다. 사진가들은 사람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대환영했다. 당시 노르웨이의 한 대학생이 500장 넘게 찍은 몰래카메라의 사진들은 19세기 오슬로의 거리 풍경을 보여 주는 귀중한 사료로 여겨지고 있다.

언론이 몰래카메라를 처음 사용한 예로는 1928년 뉴욕의 ‘데일리뉴스’다. 전기의자로 사형 집행하는 장면을 기자가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대서특필한 뉴스가 있다. 데일리뉴스는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모험을 했지만, 오늘날 몰래카메라는 언론의 잠입 취재를 통해 사회의 불법행위 현장을 촬영하고 고발하는 공익적 취지의 보도 기법이기도 하다.

몰래카메라 기기 자체는 죄가 있을 리 없다. 몰래카메라를 나쁜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고, 문제의 본질은 초소형 카메라의 주된 사용자인 남성의 왜곡된 성 의식에 기인한다. 여성 신체에 대한 남성의 관음증을 사회적으로 묵인하는 탓이다. 학자들은 한국에서 근대사회 이후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관심을 끌기 시작했으며 대중매체가 그런 인식을 확산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영화, 드라마, 광고가 가르쳐 주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매일 보면서 학습해 왔다. 생활 주변에서 접하는 미디어는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가득차고, 미디어 플랫폼이 넘쳐나는 오늘날에는 훔쳐보기 수위를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훔쳐보기의 원조는 고대 잉글랜드 코번트리의 고다이바 백작 부인 전설에서 나온다. 영주가 세금을 무리하게 징수해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부인 고다이바는 남편에게 세금을 감면하라고 간청했다. 영주는 “당신이 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생각해 보겠다”고 놀렸고, 고다이바는 고심 끝에 남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듣고 부인이 마을을 돌 때 아무도 내다보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톰이라는 남자는 이를 어기고 부인의 벗은 몸을 훔쳐보았고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한다. 영어의 ‘피핑 톰’(Peeping Tom)은 여기서 유래한다.

취재나 수사 목적상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몰래카메라는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초소형 기기로 발전했다. 초소형 카메라가 범죄에 사용된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기기 생산과 판매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 초소형 카메라를 무조건 범죄용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해결책은 남성의 왜곡된 성 의식을 개선해 관음증의 폐단을 줄여 가는 것이다. 휴머니티를 바탕으로 서로 동등하게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언론이 캠페인을 주도하고 정부가 충실한 정책을 수립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면 점차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엘륄은 테크놀로지가 지니는 가치의 양면성을 지적했고,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에 따라 최선 또는 최악의 결과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소형 카메라가 관음증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건강한 사회문화를 형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2018-06-06 26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