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준비됐나” 3, 2, 1, 쾅… 2번 갱도 입구 바위·흙 쏟아져

입력 : ㅣ 수정 : 2018-05-2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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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분 간 핵실험장 폐기 행사
5차례 핵실험 2번 갱도 첫 대상
15초 뒤 200m 떨어진 관측소 ‘쾅’
막사·생활건물 등도 연쇄 폭파
5개국 30여명의 기자단 참관
北 “핵 없는 평화로운 세계 건설”
추후 사찰·검증 뒤따를 가능성


“촬영 준비됐나?…3, 2, 1.”

“쾅~”
폭파 직전 풍계리 핵실험장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민간 위성업체 디지털글로브가 24일 공개한 핵실험장 주변 위성사진에 갱도 폭파 장면을 관측하기 위한 전망대(위쪽 원)가 설치된 모습이 보인다. 앞서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북한이 핵실험장에서 전망대 설치로 추정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사진에는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추가로 정비됐고 각 갱도 주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창고형 건물이 등장했다. 이 중 일부는 폭발물 보관을 위한 용도로 보인다고 38노스는 분석했다. 길주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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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파 직전 풍계리 핵실험장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민간 위성업체 디지털글로브가 24일 공개한 핵실험장 주변 위성사진에 갱도 폭파 장면을 관측하기 위한 전망대(위쪽 원)가 설치된 모습이 보인다. 앞서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북한이 핵실험장에서 전망대 설치로 추정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사진에는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추가로 정비됐고 각 갱도 주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창고형 건물이 등장했다. 이 중 일부는 폭발물 보관을 위한 용도로 보인다고 38노스는 분석했다. 길주 로이터 연합뉴스

24일 오전 11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현장에서 북측 관계자는 5개국에서 방북한 기자단에게 촬영 준비 여부를 물은 뒤 바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쾅’ 하는 굉음이 울렸다. 2번 갱도를 폭파시킨 것이다. 2번 갱도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북측 군인 4명이 갱도와 관측소를 폭파할 준비를 마치고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이 사전브리핑을 한 뒤였다.

해발 2205m의 만탑산을 흔드는 묵직한 굉음이 울리고 2번 갱도 입구로 흙과 부서진 바위가 쏟아져 나왔다. 이후 갱도 안쪽에서 두 번의 폭발음이 울렸다. 바로 15초 뒤 관측소를 폭파했다. 굉음과 함께 짙은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계곡을 뒤덮다가 내려갔다. 연기가 걷히자 관측소에서 부서져 나온 파편이 사방에 가득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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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북한 당국이 공언한 지 34일 만에 북한의 유일한 핵실험장인 풍계리 북부핵시험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날 폭파 행사는 오후 4시 17분까지 317분간 이어졌다. 5개국 30여명의 기자단이 참관하는 가운데, 북측이 투명하게 폐기를 진행하면서 전 세계에 비핵화 의지를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했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북측은 폭파 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핵무기연구소 성명을 발표하고 “지상의 모든 관측 설비들과 연구소들, 경비 구분대들의 구조물들이 순차적으로 철거되고 해당 성원들이 철수하는 데 따라 핵시험장 주변을 완전 폐쇄하게 된다”고 했다. 또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 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세계 평화 애호 인민들과 굳게 손잡고 나아갈 것”이라며 비핵화 의지를 나타냈다. 핵실험장의 2개 갱도(3, 4번)가 위력이 큰 핵실험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기자단에 의해 확인됐다고도 주장했다.

당초 김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5월 중에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한·미 전문가 및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이후 북측은 참관 대상에 대해 전문가를 제외한 5개국(한국, 영국, 미국, 중국, 러시아) 언론으로 바꿨고 5월 23~25일 사이에 기상 상황에 따라 갱도를 폭파할 거라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16일부터 북측은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등을 비난하고 한국 정부의 기자단 명단 접수를 세 번이나 거부했다. 지난 22일에는 한국을 제외한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언론만 북 원산에 도착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체제안전보장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후인 23일 아침에야 북측은 한국 기자단의 방북을 허용했다.

북측이 당초 입장과 달리 전문가의 참관을 배제한 것은 준사찰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북측이 선제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핵화 검증 행사가 될 수 있다. 실제 북측 세관은 기자단이 한국에서 준비해 간 방사능측정기의 반입을 제한하고 귀국 시 찾도록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3번과 4번 갱도가 가용성이 높은데 이를 포함하고 나머지 부속건물까지 모두 폭파한 것을 보면 거의 예상했던 수준으로 작업을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폭파 폐기 참관단에 전문가들이 빠졌다는 점에서 불신을 제기하기도 한다. 여섯 차례 진행한 핵실험으로 이미 충분한 데이터를 마련한 상태에서 핵실험장 폐기로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추후 핵실험장 폐기에 대한 사찰 및 검증 절차가 뒤따를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핵실험장 폐기는 일정 부분 빛이 퇴색하게 됐다.

풍계리 외교부 공동취재단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8-05-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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