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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여주인공에 속고 있나요?

동화 속 여주인공에 속고 있나요?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8-05-04 20:40
업데이트 2018-05-0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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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이 되는 법/서맨사 엘리스 지음/고정아 옮김/민음사/364쪽/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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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대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해피엔딩의 동화인 줄 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선가 좀더 선정적이고 섬뜩한 내용이 담긴 여러 버전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과 여태 알던 ‘동화 같은 동화’는 독일의 그림 형제가 각색한 결과물이란 걸 알게 된다. 새 책 ‘여주인공이 되는 법’이 전하려는 내용이 정확히 이와 같다. 문학작품 속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장치, 예컨대 기독교적 구원, 남성과 여성의 역할론 등이 담겨 있는지를 ‘알아버린’ 한 여성의 주장이 담겼다. 저자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버리고 다리를 얻은 인어 이야기에 열광했던 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를 밝히기 위해 어린 시절 읽은 작품들을 동원하고 있다. ‘인어공주’ 등 동화와 ‘빨간머리 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모두 11편의 작품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라크계 영국인이다. 정확히는 이라크에 거주하는 유대인의 후손이다. 예단일 수 있으나, 이 같은 주변 환경만으로도 저자의 앞날은 대략 그려진다. 특정한 시기부터 남학생과 다른 방식의 교육을 받고, 관습의 체득을 강요당하다, 수염을 기른 유대인 남자와 결혼해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아이들을 낳고 살아갈 것이다. 저자는 이런 도식적인 삶이 싫었다. 리지 베넷(‘오만과 편견’의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저자를 페미니스트의 길로 이끈 주인공은 스칼릿 오하라(‘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저자가 처음 스칼릿과 만난 건 열여섯 살 때다. 당시 저자의 관심은 오로지 “스칼릿의 17인치 허리”였다. 당시 자신의 허리둘레가 무려(?) 26인치였으니 소녀의 감성으로는 그럴 법도 하다. 이제 저자의 관심은 더이상 스칼릿의 허리 사이즈에 있지 않다. ‘매사 제멋대로인 모든 욕망의 결정체’보다 ‘어느 누구보다 용감했던 여성’이란 점에 더 매력을 느낀다. 스칼릿 스스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지만, “(스칼릿)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페미니스트로 이끌었”던 거다. 저자가 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본 시각은 “온당한 페미니즘”이다. 저자는 여주인공들의 서로 다른 조언에 귀 기울이며, 세상 사람 모두가 주인공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고군분투 끝에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은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다. ‘프래니와 주이’ ‘콜드 컴포트 농장’ 등처럼 익숙하지 않은 작품도 인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의 얼개 정도는 미리 파악해 둬야 저자의 주장을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8-05-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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