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정은의 대중국 발언을 주시하는 이유/서상문 환동해미래연구원장

입력 : ㅣ 수정 : 2018-05-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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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문 환동해미래연구원장

▲ 서상문 환동해미래연구원장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의 길을 빨리 걸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지난달 방중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했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 말이다. 방북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도 중국의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중국식 개혁ㆍ개방정책을 취하겠다는 의미로 들어도 될까. 남북 통일은 자본주의를 적대시하는 주체사상과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물과 기름 같은 이질적인 이념 문제가 해소돼야 가능한데, 갈 길이 먼 장도의 출발점에 선 지금 김정은 발언의 진정성과 속내가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행보로는 김 위원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하는 진정성이 읽힌다. 올해 신년사에서 그가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고, 지난 남북 정상회담 때 평화의집 방명록에도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서명한 점도 그렇다. 이는 2016년 제7기 조선노동당대회 결정문에서 암시됐듯 이 갑작스런 임기응변은 아닌 듯하다.

북한이 처한 국내외 정세와 김정은의 언행으로 봐선 그는 베트남 모델이 아닌 일부 중국식 경제 시스템을 답습해 북한식 경제개혁 노선, 즉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중국의 개혁ㆍ개방 때와 유사한 행보를 걷고 있는 점이 그 근거의 하나다.


1978년 12월 통과된 중국 ‘제11계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공보’에는 경제관리체제와 경영관리방법의 ‘개혁’이 제시됐을 뿐 ‘개방’이라는 자구는 없었다. 개방 의지로 해석될 대목으로 자립갱생의 기초 위에 세계 각국과 평등하고 상호 이익을 얻는 경제협력을 적극 발전시키며, 세계 선진기술과 선진설비 채용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북한도 지난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의 사회주의경제 건설노선 의정보고에서 김정은은 ‘개혁’과 ‘개방’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개혁ㆍ개방이라는 말이 없다고 해서 북한이 개혁ㆍ개방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덩샤오핑 등 중국의 새 지도부는 사회주의 개조의 기본이 완성되면 당 노선의 중점을 경제와 기술혁명에 두기로 한 마오쩌둥의 구상대로 국정 운영의 중심 과제를 정치 과다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전환시켰다. 김정은도 2013년 3월 자신이 국정 목표로 제시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승리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 노선의 종료 선언과 동시에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노선으로 전환했다.

중국 개혁ㆍ개방 당시 사회주의 개조의 기초 완성처럼 김정은에게 노선 전환의 조건은 핵보유국이다. 이는 핵 보유가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이라는 선대의 유훈과 일치한다. 또 개혁ㆍ개방 정책 전환 시 덩샤오핑이 그랬듯이 김정은도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의 강조와 함께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의 실현과 국가 건설의 기초이며 국력을 결정할 과학과 교육을 강조했다. 과학은 1945년 이후 김일성이 남한의 기술자와 지식인을 데려오라고 지시한 바 있듯이 북한의 주요 과제이며, 교육은 고난의 행군과 핵개발에 올인함에 따라 무상교육 체제가 붕괴된 것을 염두에 둔 결의였다.

김정은의 중국 모델 선택은 미국 주도의 봉쇄에 직면해 외부 세계, 국제 체제와의 단절로 인한 고립이 더 지속될 경우 북한 내부의 억제된 분출 욕구가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다 무역의존도가 90%를 넘고 있는 중국이 아니면 미국 견제는 물론 미국을 대신해 핵포기 반대급부로 경제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주체사상과 자력자강을 고수하며, 민주집중제의 집단지도체제로 나아간 중국과 달리 김정은 개인 권력을 강화할 것이다.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3자가 절묘하게 얽힌 시운에 즉응해 자의든, 타의든 어차피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중국을 뒷배로 해서 그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겠다는 게 김정은의 속내로 보인다.
2018-05-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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