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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술 취했다고 봐주는 法, 더이상 안 된다

[사설] 술 취했다고 봐주는 法, 더이상 안 된다

입력 2018-05-02 23:00
업데이트 2018-05-03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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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시민을 구조하다 폭행당한 119 여성 구급대원이 후유증에 시달리다 끝내 뇌출혈로 숨졌다. 전북 익산소방서 소속인 강연희 소방위는 한 달 전 도로에 쓰러진 취객을 구조하던 과정에서 취객에게 머리를 맞았다. 19년간 구조 현장을 누비며 꾸준히 실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는 등 강 소방위는 누구보다 직업정신이 투철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강 소방위의 어이없는 희생에 ‘주취 폭행’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또 높아지고 있다. 가해자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하면 이번에도 크게 처벌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술 취했다고 봐주는 법 제도를 언제까지 그대로 놔둘 것이냐는 지적도 쏟아진다.

소방관이 업무 중 폭행이나 폭언을 당한 사례는 4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경찰관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야간 근무에서 경찰관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이 주취자들의 폭언과 폭행이다. 상습 주취자나 폭행 경력자는 정보를 별도 공유하고, 엄격한 사법 조치 방안을 미루지 말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술에 관대한 문화다. 술김에 한 실수에 책임을 따져 묻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이런 정서가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취 감형’ 풍토를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주취 감형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범행할 경우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줄여 주는 형법 제10조의 규정이다. 조두순 사건으로 주취가 면죄부일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로 양형 기준은 약간 손질됐다. 성폭력 범죄에 관해서는 심신장애 감경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조항도 추가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음주 범죄에 관대하다. 술 마셨다고 봐줄 게 아니라 위험성을 알고도 자의로 술을 마셨다면 가중처벌해야 할 일이다. 실제로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은 음주 범죄를 더욱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주취 감형과 관련한 법안은 꾸준히 발의됐으나, 국민 눈높이에 맞는 법제도 개선은 가시화하지 않고 있다. 음주를 심신장애로 관용해 줄 수는 없다. 상식과 동떨어진 현행 법이 음주 범죄를 오히려 조장하는 측면이 크다.

불미스러운 일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당장 법을 손볼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더이상 보여 주기식 법안 발의에 그쳐서는 안 된다.
2018-05-0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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