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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 기자의 Who일담] 누구를 위해 색깔론을 울리나

[김진아 기자의 Who일담] 누구를 위해 색깔론을 울리나

김진아 기자
김진아 기자
입력 2018-05-01 17:54
업데이트 2018-05-0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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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나를 두렵게 한 건 딱 하나였어. 흉측한 꼴로 죽어 누워 있는 것. 그건 여자이기에 갖는 공포였지. … 제발 포탄에 맞아 갈가리 찢기는 일만 없기를 바랐어. … 그게 어떤 건지 나는 알거든. … 내가 그 시신들을 수습했으니까….”
김진아 정치부 기자
김진아 정치부 기자
지난 2월 설 연휴 때 읽은 벨라루스 출신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소비에트 여성 200여명을 인터뷰해 전쟁의 참상을 여성의 목소리로 고발했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에서 전투로 팔, 다리가 잘려 나가는 장면을 봐도 연출이라는 생각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영상이 아닌 글이었음에도 그 피해담이 너무 생생해 그 참담함이 피부 세포 하나하나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평소에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은 거의 없었다. 태어났을 때는 이미 휴전된 지 오래였고 가족과 친척 중에 실향민 출신이 없어서 그런 듯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또래의 많은 한국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하면 일본인을 필두로 외국인들은 한국에 전쟁이라도 나는 게 아니냐고 당황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또 쐈냐’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하던 일을 계속한다. 휴전 상태가 워낙 오래되다 보니 진짜 휴전 중임을 무심코 잊어서였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 진짜 전쟁 날지도 모르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쏘아붙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꼬마 로켓맨’이라고 맞받아쳤을 때다. 지금 북ㆍ미 두 정상은 이제서야 서로를 알아본 솔메이트로 보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발언 수위가 높았고 두 정상이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여서 전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 보였다.

남북 정상회담 전날인 26일 일산 킨텍스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를 찾았을 때 여태껏 보지 못한 수많은 외신 기자들을 보며 남과 북 두 정상이 만나서 비핵화를 이야기한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일본 아사히TV 기자와 이야기를 하던 중 그 기자는 “아침 일찍부터 특별방송으로 준비한다”며 “북한의 미사일은 일본을 겨냥한 게 아닌가. 걱정이 더 많다”며 회담에 우려를 드러냈다. ‘기대와 걱정 중 어떤 쪽이냐’는 질문에 그 의도가 이해됐음에도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 지난 10년간 이렇게 대화를 하겠다는 분위기는 한 번도 없었다”고 답했다.

미세먼지가 걷힌 파란 하늘처럼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1야당에서는 ‘남북 위장 평화쇼에 불과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냉면 파티’라고 비난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건 비판보다 힘들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을 조언이다. 물론 회담 결과에 지나치게 취해 있을 것도 아니다. 북한에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회담에서 부족했던 점을 분석해 진짜 평화를 이뤄 낼 수 있도록 하는 지적이 필요한 시간이다. 품격 있는 비판은 멀리 있는 게 아닐 텐데 아직도 비판을 위한 비판에만 골몰하니 점점 국민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jin@seoul.co.kr
2018-05-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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