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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판문점 정상회담, 미증유인가 재귀인가/조동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

[시론] 판문점 정상회담, 미증유인가 재귀인가/조동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

입력 2018-04-30 22:44
업데이트 2018-04-3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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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
조동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
판문점 정상회담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에 미증유(未曾有)라는 화두를 던졌다.

남북한 지도자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은 70년 이상 막혔던 혈맥이 트이기 시작함을 예고했다. 도보다리 위에서 두 지도자가 앉아 있는 모습은 인자한 원로와 패기 있는 청년 간 진지한 대화처럼 보였다. 남북한 지도자, 영부인, 배석자들이 제주 소년 오연준군의 청아한 목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은 마치 가족 음악회와 같았다. 남북으로 갈라지는 길 위에서 두 지도자와 배우자가 상대방에게 전하는 말과 몸짓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의 이별을 연상시켰다.

판문점 회담은 평양에서 진행되었던 두 차례 정상회담과 차원이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곳곳에 남북 화해의 상징을 포함했다. 일찍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미증유가 판문점 정상회담에 어울리는 화두다.

판문점 정상회담은 원래 자리로 되돌아감을 뜻하는 재귀(再歸)라는 또 다른 화두를 던졌다. 남북한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선언문은 민족 자주의 원칙에 기반한 남북 관계 개선, 남북한 적대 행위의 중단과 향후 긴장 완화를 위한 협의, 6ㆍ25전쟁의 종전과 평화 체제의 구축을 위한 협력을 담고 있다.

판문점 공동선언에 담지 못한 중요한 합의와 양해가 있을 수 있어 현재 상태로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2007년 10ㆍ4공동성명에 비해 큰 진보를 찾기 어렵다. 민족의 이해와 해외 동포를 위한 남북한 협력이 빠지고 비핵화에 관한 원칙적 선언이 들어갔다는 점을 제외하면, 판문점 정상회담은 10ㆍ4공동선언과 유사하다. 북측에서 언급한 것처럼 “잃어버린 11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예상되는 남남 갈등 또한 재귀를 연상시킨다. 판문점 선언을 둘러싼 정파적 해석이 너무 달라 동일한 정상회담을 보고 동일한 선언문을 읽었는지 의심할 정도다. 특히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문안에 대한 해석 차이는 한국 사회의 깊은 불신과 갈등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문안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한 국제사회의 입장을 일부 반영하지만 주한미군 철수와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한 상태를 의미하는 북한식 “조선반도의 비핵지대”를 절충한 듯 보이기 때문에 정파 간 해석 차이와 논란이 뒤따라 나왔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번영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남남 갈등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판문점 정상회담이 정파적인 해석을 초월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북한의 현실에 관한 냉철한 인식이다. 현재 북한은 국제사회의 일부로부터 사실상 핵무장국으로 이미 인정을 받고 있다. 북한의 핵을 무력으로 제거하려면 엄청난 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

북한의 경제가 세계 경제와 연결됐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제재가 북한 정권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북한 내부에 잠재된 취약성이 언제든지 빠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경제적 취약성을 종합하면 북한의 핵무장이 기정사실화된 위협이며, 동시에 북한 내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판문점 정상회담이 미증유와 재귀 중 어느 쪽에 귀결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진행형이다. 우리가 북한을 둘러싼 기회와 위기에 대한 냉철한 현실 진단을 공유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 번영을 위해 오래 참으며 함께 노력하면 판문점 정상회담이 미증유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오연준군이 전한 가사처럼 꿈에 보았던 길에서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을 느낀다. 새로운 꿈들을 기대하며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한 걸음을 겨우 내디뎠다. 판문점 정상회담이 불미스러운 재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 지도자의 노력은 물론 한국 안의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2018-05-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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