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북·일 대화의 전제조건/김태균 도쿄 특파원

입력 : ㅣ 수정 : 2018-04-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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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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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균 도쿄 특파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양복 상의 왼쪽에는 항상 파란색 리본이 달려 있다.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 등 다른 나라 정상들을 만날 때에도 리본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블루리본’이란 이름의 이 표지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의 석방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납치 피해자와 가족들이 북한 땅까지 국경 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는 뜻에서 그 색깔로 했다고 한다.

블루리본을 다는 사람이 아베 총리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납치 문제는 자신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치인 아베가 오늘날 총리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게 해준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1954년생인 아베 총리는 1979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고베제강에 다니다가 1982년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외무상에 취임할 때 그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10여년 뒤인 1993년 불혹을 앞두고 처음 중의원이 된 그는 이후 정계에서 빠르게 성장해 2000년 모리 내각에서 처음으로 관방 부장관으로 입각했다. 그가 국민적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이었다. 관방 부장관으로 유임돼 총리와 동행했던 그는 납치 사실에 대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과에 더해 피해자 5명을 데리고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 김정일 위원장과의 약속은 잠깐 가족상봉만 하고 피해자들을 다시 북한에 돌려보내는 것이었지만, 일본에 돌아온 아베는 태도를 싹 바꿨다. 북에 다시 보내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한과의 수교를 기대하고 하고 있던 외무성은 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아베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전폭적인 여론의 지원 속에 피해자 5명의 영구 귀국을 관철시켰다. 이로 인해 북·일 관계는 다시 얼어붙었지만, 아베는 자국민을 지켜 낸 영웅이 됐다. 그 일은 정치인 아베의 출세 가도에 날개를 달아 주었고, 2005년 10월 관방장관을 거쳐 그 이듬해인 2006년 9월 만 52세에 제90대 총리(1차 내각)에 오르는 밑거름이 됐다.

지난 18~19일 미·일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납치 문제를 반드시 북·미 회담의 의제로 다뤄 줄 것을 요청하고, 24일 문 대통령에게도 같은 부탁을 하면서 아베 총리 본인은 과거의 성공에 대한 향수와 기대감을 강하게 느꼈음직도 하다.

북한과의 관계 회복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재임 중 반드시 이뤄 내고 싶어 하는 목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북한과의 수교를 통해 자국 안보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일본의 전후 과제를 청산한 인물로 역사에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납치 문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하다.

한·일 외교관들은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일본의 ‘납치 피해자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어지간한 성과와 합의로는 국민들을 납득시키고 동의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라야 위안부 문제가 일단락된 것으로 볼지 한·일 간에 평행선이 이어지는 것처럼 일본인 납치 문제도 북한이 얼마만큼의 성의를 보여야 해결로 간주할지에 대한 기준도 없고 북·일 간 이견도 크다.

앞으로 북한과 일본의 대화도 진전될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납치 문제에 대한 협의가 일본 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는 수준에 얼마나 근접할지가 북·일 관계의 전체 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windsea@seoul.co.kr
2018-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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