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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부탁해]‘내비’ 켜보니 평양~판문점 1시간 43분…“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뉴스를부탁해]‘내비’ 켜보니 평양~판문점 1시간 43분…“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오달란 기자
오달란 기자
입력 2018-04-28 16:20
업데이트 2019-02-07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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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맛보고 싶다고 요청한 옥류관 평양냉면을 어렵사리 공수했다고 설명하던 도중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문장이었죠. 배석한 남북 수행원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지난 2007년 10월 2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량 행렬이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 2014.8.18 연합뉴스
지난 2007년 10월 2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량 행렬이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 2014.8.18 연합뉴스
베일에 싸여있던 ‘수수께끼 지도자’ 김 위원장은 재치 있고 진솔한 화법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의 발언 중에 인상적인 대목이 더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평양에)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不備)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습니다.”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177km

평양에서부터 정상회담이 열린 경기 파주 판문점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김 위원장이 다음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남북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오는 가을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공식화한 바 있습니다.
전세기에서 본 北농촌
전세기에서 본 北농촌 지난 2000년 남북 장관급회담 당시 우리측 대표단을 태운 아시아나 전세기에서 바라본 평양 근교 농촌. 한반도에 걸쳐 내린 폭우에도 별다른 피해는 없어 보였다.쭉 뻗은 평양~황산간 고속도로에는 차량통행이 눈에 띄지 않고 있다. 2000.08.30 사진공동취재단
불편한 도로사정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김 위원장은 오전 회담 마무리 발언에서 또 한번 언급합니다.

“말씀드리자면 고저 비행기로 오시면 제일 편안하시니까, 우리 도로라는 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불편합니다. 제가 오늘 내려와 보니까 (문 대통령이) 오시면 이제 공항에서 영접 의식을 하고 이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습니다.”

이쯤되면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양에서 판문점까지는 대관절 얼마나 멀기에, 또 도로 사정은 얼마나 나쁘기에 김 위원장이 이렇게 말했을까요?
지난 1992년 남북 고위급 회담 남측 대표들이 탑승한 차량행렬이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에 정차 돼 있는 모습. 2014.8.18 연합뉴스
지난 1992년 남북 고위급 회담 남측 대표들이 탑승한 차량행렬이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에 정차 돼 있는 모습. 2014.8.18 연합뉴스
그래서 내비게이션을 켜봤습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길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얼마나 걸리는 지 검색해 봤습니다.

지도와 길찾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와 다음, 구글은 북한의 위성지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다음은 제한된 지도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확대하면 평양 시내와 개성 시내의 꽤 자세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북한의 특정 건물 또는 지명을 검색한다거나 예상 길찾기를 해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평양 시내 모습이 나와 있는 네이버 지도. 네이버 지도 캡쳐
평양 시내 모습이 나와 있는 네이버 지도. 네이버 지도 캡쳐
구글지도는 더 상세합니다. 평양 시내 모습을 위성사진으로 확대해서 볼 수 있고 시내 도로 이름과 금수산태양궁전, 김일성종합대학교, 주체사상탑 등 평양의 랜드마크를 검색해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 고속도로 길이, 남한의 17.4%

무엇보다 길찾기 기능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구글의 길찾기 기능을 통해 평양에서부터 판문점까지 걸리는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177km의 거리, 1시간 43분이 걸린다고 나옵니다. 가장 빠른 경로로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1시간 43분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1시간 43분 구글지도의 길찾기 기능을 통해 확인한 평양~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이동경로. 177km 거리로 평양-개성고속도로를 경유하면 1시간 43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2018.4.28
구글지도
이 정도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180km) 입니다. 내비게이션은 평양부터 개성까지 뚫린 평양-개성고속도로를 166km 가량 달리라고 안내합니다. 고속도로가 끊긴 지점으로부터 약 1.4km만 더 달리면 판문점이 나옵니다.

김 위원장 말대로 멀다고 할 수는 없는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도로 사정은 어떨까요. 통일부의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평양과 개성을 잇는 고속도로는 총길이 171km입니다.

북한의 고속도로는 모두 6개 노선입니다. 평양~남포 고속도로는 44km의 구도로와 53km의 신도로로 이뤄져 있습니다. 평양~원산 고속도로는 209km이며 원산~금강산 고속도로는 106km, 평양~향산 고속도로는 146km입니다. 평양~개성 구간까지 합쳐 전부 774km입니다.
북한의 주요 고속도로 현황
북한의 주요 고속도로 현황 북한정보포털
남한의 고속도로가 서울에서 전국으로 뻗어나가듯, 북한 고속도로의 중심도 수도인 평양직할시입니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얽혀 더 이상의 고속도로가 필요 없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남한과 달리 북한의 고속도로는 극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악한 도로 사정에 김정은 “평양에는 비행기로 오시라”

2016년 기준 북한의 도로는 2만 6176km로 남한 도로(10만 8780km)의 24.1%에 불과합니다. 고속도로의 경우 남한(4438km)의 고작 17.4%입니다.
남북한 도로 길이 비교
남북한 도로 길이 비교 북한정보포털
질적인 측면을 따져봐도 남한에 크게 못 미칩니다. 북한의 6개 고속도로 노선 가운데 평양~남포(44km) 등 주요 구간만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도로 포장 상태가 열악하다보니 김 위원장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뜻의 ‘불비’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평양~개성 고속도로는 1987년 착공됐다고 합니다. 통일부의 ‘주간북한동향’ 67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 고속도로가 1992년 완공됐다고 선전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평양~개성 고속도로의 폭이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 폭보다 넓고 도로 중심에 중앙분리대가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남북 고속도로 현황 비교
남북 고속도로 현황 비교 굵은 주황색선으로 표시된 남북한 고속도로 현황. 거미줄처럼 얽힌 남한에 비해 현격히 부족한 북한의 고속도로 사정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2018.4.28
네이버 지도 캡처
곡선도로는 전구간의 3%미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평양시 남쪽 교외부터 10개의 시군구를 경유해 개성까지 400여리에 달하며 고속도로 주변의 철강재생산기지와 경금속생산기지, 곡창지대들이 연결돼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2007년 노 전 대통령 평양까지 고속도로 이동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남북정상회담 방북단을 태운 차량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지역을 통과하고 있다. 2018.4.26 연합뉴스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남북정상회담 방북단을 태운 차량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지역을 통과하고 있다. 2018.4.26 연합뉴스
평양~개성 고속도로는 지난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할 때 이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오전 8시쯤 청와대를 출발해 한시간 뒤 군사분계선을 통과했습니다. 개성공단에 도착해 시민들의 인사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은 평양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해 이동했습니다.

중간에 이 고속도로 유일의 수곡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고 오전 11시 30분쯤 평양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광장에서 북측의 공식 환영을 받았습니다. 오후 12시 노 전 대통령은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습니다. 개성에서 평양까지 이동한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정도였습니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수곡휴게소에서 북측접대원들이 남측 수행원들에게 단물을 서비스하고 있다. 2007.10.02 청와대사진기자단=연합뉴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수곡휴게소에서 북측접대원들이 남측 수행원들에게 단물을 서비스하고 있다. 2007.10.02 청와대사진기자단=연합뉴스
북한의 열악한 교통사정에 대한 김 위원장의 걱정은 ‘판문점 선언’에도 담겼습니다.

남북 정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 2003.10.09 사진공동취재단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 2003.10.09 사진공동취재단
2007년의 10·4선언은 문산~봉동간 철도 화물수송을 시작하고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문제 협의 추진 등 합의사안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 정상은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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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포옹
평화의 포옹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밝은 표정으로 포옹하고 있다.
판문점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다시는 뒤로 돌아가지 말자”며 합의 실천 의지를 강력히 밝힌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선언대로라면 개성부터 평양을 잇는 고속도로는 말끔한 새옷으로 갈아입게 됩니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점심은 옥류관에서 평양냉면 한그릇 할까?”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그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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