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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에게 해외 여행은 ‘근대에 대한 동경’이었다

조선인에게 해외 여행은 ‘근대에 대한 동경’이었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18-04-27 18:32
업데이트 2018-04-2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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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조선의 여행자들/우미영 지음/역사비평사/529쪽/2만 5000원

“밤 되어 시모노세키 항에 정박하고 히로시마현에서 아침 해 바라보았지. 해군과 육군을 양성하느라 산자락 바닷가에 길을 내었고 산은 푸르게 숲이 우거졌으니 국방의 위력을 알 수 있었네.”
1899년 9월 인천(제물포)과 노량진 간 철도가 개통됐다. 조선 땅에 최초로 열차의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차가 들어서면서 당시 여행의 범위도 크게 확장됐다. 역사비평사 제공
1899년 9월 인천(제물포)과 노량진 간 철도가 개통됐다. 조선 땅에 최초로 열차의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차가 들어서면서 당시 여행의 범위도 크게 확장됐다.
역사비평사 제공
1930년대는 여행 또는 관광이 대중화한 시기다. 이 시기 사람들은 역사적인 곳뿐 아니라 자연 풍광이 수려한 관광을 즐기기도 했다. 꽃 구경을 특히 좋아해 ‘꽃의 조선’으로도 불렸다. 당시 인기 있었던 창경원 벚꽃 놀이 풍경. 역사비평사 제공
1930년대는 여행 또는 관광이 대중화한 시기다. 이 시기 사람들은 역사적인 곳뿐 아니라 자연 풍광이 수려한 관광을 즐기기도 했다. 꽃 구경을 특히 좋아해 ‘꽃의 조선’으로도 불렸다. 당시 인기 있었던 창경원 벚꽃 놀이 풍경.
역사비평사 제공
1918년 대구에서 경주를 통과해 불국사에 이르는 경편철도가 개통됐다. 193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경주는 조선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이 찾은 관광지였다. 당시의 경주 불국사 모습.  역사비평사 제공
1918년 대구에서 경주를 통과해 불국사에 이르는 경편철도가 개통됐다. 193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경주는 조선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이 찾은 관광지였다. 당시의 경주 불국사 모습.
역사비평사 제공
1908년 ‘대한학회월보’에 실린 유학생 옥구생의 글 ‘동도잡시’의 일부다. 그는 당시 선진국이었던 일본에 도착해 군대와 울창한 산림을 마주하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강해지는 일본을 본 그는 기울어가는 조선을 돌아보며 “조국을 크게 세우고 다시금 억만세를 외쳐보리라”면서 시를 마무리한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병탄 사이에 놓인 유학생의 일본에 관한 부러움과 조국에 대한 다짐이 이렇게 교차한다. ‘근대 조선의 여행자들’은 당시의 다양한 여행자와 그들의 여행 양상, 그리고 여기에 담긴 여행자들의 시선을 담았다. 학생, 기자, 작가, 학자, 정치인을 비롯해 일반 관광객들의 여행기는 물론 당시 문학작품과 관공서 글 등을 수록하고 분석했다.

지금은 여성 대부분이 여행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지만, 당시엔 교육받은 극소수 여성만 가능했다. 그 시대 여성들의 외국 여행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는 억압받는 여성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여성 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박인덕이 1928년 한 잡지에 기고한 ‘조선여자와 직업문제’에도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시를 향해 올 때 역장마다 여역원(여성 역무원)들이 간단한 행장을 차리고 일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어디든지 사업이란 명칭이 있는 곳에는 남녀가 같은 권리를 가지고 일을 한다. (중략) 우리 가정 같아서야 일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가정 사업에 헤매이기에 감히 다른 일은 염두에도 못 두게 되고…”라고 지적한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 수학여행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다. 수학여행이 학교 정기 행사로 정착된 시기는 1920년쯤부터다. 일제는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 발표 이후 실용주의를 부르짖으며 실업교육에만 치중하다 3·1운동 이후 교육정책을 달리한다. 중등교육과정에 인문교육을 시작했으며, 수학여행은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상 여행은 유흥으로 비칠 수 있다. 동아일보는 1926년 10월 11일자에 “조선의 경제 상태에 비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여행 시기가 농가의 추수기와 맞물려 인력적으로 낭비”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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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1~5부까지 여행과 여행자의 유형에 따른 다양한 여행기를 수록하고 분석했다. 다만 6부에서는 중외일보사 신문기자인 이정섭을 별도로 빼내 분석했다. 중외일보사는 1920년대 국내외 변화에 맞춰 ‘세계 시찰’을 목적으로 그를 중국과 유럽에 파견했다. 일본에서는 보통선거 시행이 가시화하고, 사회주의 운동이 진전될 때였다. 중국에서는 국민당이 북벌을 전개할 무렵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민족주의운동이 고조되는 등 역동적인 움직임이 보였다. 지금까지 시찰자 대부분이 일본 식민지 시선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반면, 그는 객관적이고 당당한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여행기에서 근대 조선의 음울한 분위기가 조금씩 벗겨지는 것도 이즈음이다. 책은 저자가 썼던 논문을 단행본으로 바꾸며 다소 딱딱하게 읽힌다. 그러나 근대 조선에서의 여행은 어땠는지 살펴보는 여정은 그 자체로 즐거운 여행임에 틀림없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8-04-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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