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고독을 만들자 새로운 관계가 시작됐다/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입력 : ㅣ 수정 : 2018-04-13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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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에서 후배 우영이 어머니 가시는 길을 함께했다. 양지바른 곳에 모시고 서울로 오는데 오래 담아 두었던 말인지 상주가 그새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몇 년 전 어머니께 여쭤 보았습니다. ‘엄마는 언제 가장 행복했어요?’ ‘응. 너희 넷 도시락 쌀 때가 제일 좋았던 듯싶구나.’ 어머니는 아마 그때로 돌아가신 게 아닐까.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행복한 시간은 자신보다 자식들에게 맞춰져 있었을 것이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어제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잘 지내지? 5월에 피는 라일락이 올봄에는 벌써 피었다”고 하시며 겨울이 유난히 길어서 그랬는지 여름이 특별히 더워지려는지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이 후두둑 피었다가 후다닥 진다고 덧붙이셨다. “저도 나이를 먹어서” 했다가 혼쭐이 났지만 어머니 마음을 조금씩 알아 간다. 순서 없이 피고 속절없이 지는 시절에 아들을 걱정하고 계셨다. 전화를 끊으며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잘해라” 그 말씀을 지고 산 것은 맞은데 잘 해내지는 못했다. 민폐도 적지 않고 나만 생각하며 사는 날이 많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좋은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테드(TED) 동영상 ‘어떻게 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행복에 관한 가장 오래된 연구의 교훈’을 찾았다. 강연은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팀이 1938년부터 724명의 삶을 75년간 매년 추적하면서 각계각층으로 성장한 그들의 일, 가정생활, 건강에 대해 질문한 결과다. 첫 번째 집단은 하버드대 2학년 생일 때, 두 번째 집단은 보스턴 빈민촌 소년들로 가난하고 문제 많은 가정에서 선별됐다.


연구의 네 번째 책임자인 정신과 의사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지금 당신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면 어디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할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연구의 분명한 메시지는 좋은 인간관계가 우리를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 그게 전부다.”

그가 소개한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은 첫째, 사회적 관계가 정말 좋은 역할을 하고 외로움은 독약이다. 가족, 친구, 공동체와 관계를 잘 맺고 있는 사람은 더 행복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더 오래 산다. 둘째, 친구 숫자가 아니라 질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50세에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80세에 가장 건강했다. 친밀한 관계가 노화를 막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셋째, 좋은 관계가 두뇌도 보호한다. 어려울 때 타인에게 의지할 수 있다고 느끼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력은 오랫동안 잘 유지된다. 사람들은 명성과 부, 성취를 통해 성장한다고 믿었지만 이 연구는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 잘산다는 것, 좋은 삶은 좋은 관계로 성립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람들과 잘 지내라는 어머니의 주장은 요즘 낮에는 거세게 무너지고 있지만 밤에는 유지되는 기득권 세계가 움직이는 규칙, “형님”과 “의리”로 이루어진 공범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겨울 노란 등산화를 샀다. 술자리 호언이 여행으로 이어졌다.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고 남섬 퀸즈타운에 도착했다. 공항 직원들은 유난히 등산화를 꼼꼼하게 검색했다. 오염된 흙이 그들의 영역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샅샅이 뒤졌다. 국경을 넘자 다른 규칙이 적용되고 있었다. 빠르게 대신 안전하게. 새 등산화는 이전 경험이 없으니 무사통과였고 다른 신발은 강제 세탁됐다. 여행은 자연의 위대함으로 시작해 생각의 전환으로 마무리됐다. 밀퍼드국립공원 트레킹은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4박5일간 자고 먹고 걷는 여행이다. 오지의 관건은 비연결이었다. 3일이 지나자 스마트폰 금단 현상이 가시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단절해야 새로운 것으로 나아간다. 고독을 만들자 새로운 관계가 시작됐다. 여러 나라에서 온 47명은 혈연ㆍ지연 없이도 서로 도우며 편안하고 투명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좋은 연결을 위한 시작은 역설적이다. 끊어야 좋아진다. 우선 잠들기 30분 전 스마트폰을 끄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해 보자. 그리고 좋은 게 좋다는 내밀한 관행, “형님, 형님”을 멈추자. 어머니는 따뜻한 도시락과 함께 좋은 지혜를 주셨다.
2018-04-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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