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의 유레카] 자연물이자 사회적 구성물 ‘공기’

입력 : ㅣ 수정 : 2018-04-0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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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고 공기 좋은~’. 살기 좋은 곳을 알릴 때 자주 볼 수 있는 문구다. 산업화 이전에 맑은 물과 좋은 공기는 모두에게 익숙한 기본 옵션이었다. 서양 고대 자연철학자들은 물, 불, 공기, 흙을 기본 원소로 보았다. 자연을 이 원소들이 적절히 조합된 결과로 본 것이다.
네 원소 중 공기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늦었다. 과학자들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공기가 단일 물질이 아니고 여러 기체로 이루어졌음을 알아냈다. 이들은 자신이 발견한 기체에 화학 특성을 나타내는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어 탄산칼슘을 가열하면 방출되는 탄산가스는 ‘(탄산칼슘에) 고정된 공기’, 공기 중에서 폭발하는 특성을 가진 수소는 ‘타는 공기’였다.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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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프랑스 과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산소에 의한 연소 이론으로 근대 화학 정립에 기여했다. 라부아지에 이전까지 공기와 관련된 화학 변화는 이른바 플로기스톤 이론으로 설명됐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나무처럼 가연성 물질이 타는 것은 그 속에 포함된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라부아지에는 정밀한 무게 측정 방법을 통해 이것이 당시 ‘불의 공기’로 알려진 산소와 결합하는 과정임을 밝혔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기체 화학 반응을 설명한 것이다.

또 라부아지에는 기체들의 이름을 지을 때 화학 특성이 아니라 구성 성분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원소에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조합 방식으로 화합물의 이름을 지었다. ‘고정된 공기’는 산화탄소로 바꾸어 탄소와 산소의 결합물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화학반응을 원소들의 결합과 분해라는 정량적 과정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기초가 됐다.

라부아지에 이후 공기는 더이상 원소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과학자들의 탐구 대상인 ‘자연물’이었다. 공기에 대한 인식에서 사회적인 요소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적어도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는.

산업화와 함께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하자 매연, 공해, 스모그 같은 용어들이 등장했다. 스모그가 호흡기 질환을 일으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았고,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았지만 사람들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52년 런던 스모그라는 참사가 벌어진 후에야 매연을 줄이기 위한 ‘청정대기법’ 같은 제도와 저공해 기술을 도입했다. 그 결과 더 많은 화석 연료를 쓰고 더 많은 공장을 돌리지만 매연에 의한 공기 오염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통제했다고 믿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에 의한 공기 오염이 널리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황사로 인한 공기 오염이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환경운동 단체에서는 2002년에 이미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 예보제 실시를 촉구했다.

예보제는 시민들이 공기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근거를 준다. 예보제 이전까지는 그냥 흐린 날과 미세먼지 때문에 뿌연 날을 구분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 시민들은 일상의 감각보다는 예보 등급에 따라 대응한다.

이는 공기가 더이상 자연물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 됐다는 뜻이다. 예보제는 미세먼지 농도를 수치로 제공하고 동시에 좋음, 보통, 나쁨, 매우 나쁨 4등급으로 구분한다. 시민들은 수치로 판단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등급을 기준으로 삼는다. 좋음이나 보통이면 대개 안심한다. 그런데 등급의 기준치는 절대적이지 않다. 한국은 지난달 27일부터 ‘보통’의 기준을 일평균 16~50㎍/㎥에서 선진국 수준인 16~35㎍/㎥로 낮췄다. 그에 따라 미세먼지 측정치가 40㎍/㎥일 때 3월에는 ‘보통’이었으나 4월부터는 ‘나쁨’으로 예보되는 것이다. 경제, 산업 환경, 국민 인식 등 여러 사회적 요인을 고려한 정책 결정이다.

공기, 물, 소리, 토양, 미생물 같은 자연물도 건강, 안전 측면에서 평가될 때 사회적 요소가 반영된다. 기준치를 결정할 때 과학자들과 함께 사회 각계의 폭넓은 의견이 반영돼야 하는 이유다.
2018-04-1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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