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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봄꽃 반란/진경호 논설위원

[길섶에서] 봄꽃 반란/진경호 논설위원

진경호 기자
진경호 기자
입력 2018-04-05 22:26
업데이트 2018-04-0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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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다고, 시인 안도현은 말했다.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제비꽃이 보이고,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에 봄은 꼭 제비꽃 한 포기를 피워두고 간다고 했다. 그런 줄 알았다. 안 시인 말대로, 봐야 보이는 줄 알았다.

벚꽃이, 개나리만큼 부지런한 줄, 성질 급한 줄 몰랐다. 개나리에 진달래는 따라붙어도 벚꽃까지 이어붙인 노래는 들어 보질 못했고, 벚꽃은 너무도 화사하고 도도해 늘 개나리를 화동 삼아 한 발 뒤따라오는 줄 알았다.

올봄, 집앞 벚꽃은 그러하지 않았다. 개나리 따위에 봄소식을 맡길쏘냐, 같이 피었다. 기억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봄이 조화를 잃은 걸까. 그도 아니면 바빠진 봄에 행여 여름꽃 될까 놀란 봄꽃들이 마음을 고쳐먹은 걸까. 목련마저 젖살처럼 뽀얀 꽃잎을 후드득 떨어내기 시작한 걸 보면 아무래도 봄꽃들이 뭔가 떼로 작심한 듯싶다.

봄은 이제 오지 않는다. 그냥 스친다. 뿌연 하늘에 숨이 막히고, 우악한 여름이 더워 살짝 눈길만 주고 떠난다. 식목일도 3월로 옮길까 한다는데, 제비꽃 피울 겨를이나 있을지 봄이 안쓰럽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2018-04-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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